구석기 시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285
한자 舊石器 時代
영어공식명칭 Palaeolithic Ag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선사/석기
집필자 지병목

[정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돌을 깨트려서 만든 도구인 뗀석기를 만들어 쓰던 시대.

[개설]

구석기는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돌을 깨트려서 만든 도구로, 뗀석기[타제 석기]라고도 하며, 간석기[마제 석기]와 구별하여 부르는 용어이다. 인류가 가장 먼저 사용한 도구의 재질은 돌, 나무, 짐승의 뼈나 뿔 등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돌로 만든 도구를 통칭하여 석기[stone tool]라고 하며, 금속기가 출현하기 이전에 석기가 주로 사용된 시기가 석기 시대[Stone Age]이다. 석기는 제작 방법에서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깨트리거나 누르는 방법으로 만들어진 석기인 뗀석기[타제 석기(打製石器)]와 깨트려서 어느 정도 원하는 모양을 잡은 후 다시 다른 돌이나 물체와 마찰시켜 표면을 정교하게 갈아서 만드는 간석기[마제 석기(磨製石器)]로 구분된다. 이들 석기를 사용한 시기의 선, 후 차이에 따라 앞의 뗀석기를 구석기(舊石器), 나중에 등장한 간석기를 신석기(新石器)라고 한다. 또한 이들 석기가 주된 도구로 사용된 시기를 각각 구석기 시대(舊石器時代)[330만년~1만 2천년 전]와 신석기 시대(新石器時代)라고 한다.

김해 지역의 구석기에 대한 자료는 아직까지 매우 빈약하다. 지표 채집 등을 통해 뗀석기의 존재가 간혹 보고되기는 하였지만, 정식 조사를 통해 알려진 유적은 없다. 그러나 주변 지역의 발견 상황 등을 고려할 때 향후 김해 지역에서의 구석기에 대한 자료가 보완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의 연구 성과를 기대해 본다.

[구석기의 제작과 변화]

석기 제작용 돌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우선 채택되었다. 주로 점판암, 화강편마암, 안산암, 편마암, 섬록암, 규암, 석영반암, 화산암, 응회암, 사암 등 다양한 석재가 사용되었다. 결이 잘 이루어지고, 단단해서 날카로운 도구 제작에 유용한 화산암의 일종인 흑요석(黑曜石)의 원산지는 우리나라 주변에서 백두산 부근, 일본 규슈[九州] 등 극히 제한되어 있어 다른 지역의 유적에서는 드물게 발견되었다. 따라서 흑요석제 석기의 발견은 원거리 교역의 증거 자료로 활용된다. 석기는 그 용도와 석재의 성질[단단한 정도, 쪼개기 용이성 등]을 고려하여 만들어졌다. 우선 몸돌[석핵(石核)]을 또 다른 돌망치로 때리거나 큰 바위 위에 던져서 만드는 방식인 ‘직접 떼기’가 있다. 반면 몸돌에서 떼어내고자 하는 곳에 뿔이나 돌로 된 쐐기를 정처럼 대고 그 위를 돌망치로 쳐서 떼는 ‘간접떼기’ 방식이 있다. 또 다른 방법은 떼어내고자 하는 곳에 끝이 뽀족한 뿔이나 뼈, 혹은 나무 끝에 쐐기를 연결한 도구를 대고 손이나 몸 전체를 실어 누르는 ‘눌러 떼기’가 있다. 이러한 방법들은 서로 혼합하여 적용되기도 하였다. 간접 떼기나 눌러 떼기의 경우 정교하고 계획적인 떼기가 가능하여 작고 정교한 석기 제작이나 2차 가공할 때 주로 사용되었다. 구석기 시대를 전기, 중기, 후기로 구분하는데 이른 시기의 석기는 몸돌을 직접 떼기 방식의 단순한 가공을 거쳐서 만들어졌다. 주로 물체를 때리거나 자르는 등의 용도에 사용하는 대형 석기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그 종류도 다양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한 기능이 요구되었고, 그에 따라 보다 작게 쪼개거나, 세밀하게 다듬는 등 잔기술을 적용한 석기들이 만들어졌다. 몸돌에서 떼어낸 격지[박편(剝片)]를 이용한 정교하고 작은 석기가 용도에 맞게 만들어졌다. 이른 시기에는 도끼, 밀개, 찍개 등이 주류였으며, 후기로 가면서 긁개, 찌르개, 뚜르개, 자르개[석인(石刃)], 새기개, 돌화살촉 등이 나타났다.

[경상남도의 주요 구석기 유적과 전망]

현재 우리나라에는 구석기가 발견되는 유적이나 장소가 전국 곳곳에서 확인된다. 20세기 전반까지도 우리나라에는 구석기 시대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였다. 간헐적으로 발견되는 뗀석기는 신석기 시대의 것으로 해석하였다. 해방 이후 구석기 유적의 실체가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 이제는 한반도 전역에서 보고되고 있다. 대부분 수렵, 채집과 어로가 편리한 강가나 하천가 등 물이 풍부한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경기도 북부의 임진강, 한탄강 유역에 있는 전곡리 유적에서는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라는 중요한 석기가 발견되었으며, 부근에 금파리 유적 등이 있다. 남한강 부근의 수양개 유적, 창내 유적, 충청남도 금강 변에서 발견된 공주 석장리 유적, 그리고 대동강 변의 상원 검은모루 유적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현재까지 경상남도 지역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된 예는 그리 많지 않았다. 주요 유적으로는 밀양시 고례리 유적, 진주시 내촌리 유적, 사천 이금동 유적, 거창군 임불리 유적 및 함안군 우거리 유적 등이 알려져 있다.

김해시와 가까운 밀양시 고례리 구석기 유적에서는 7개의 퇴적층이 확인되었다. 이 중 구석기 문화층은 II층과 III층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24,000~25,000년 전 것으로 측정되었다. 몸돌, 격지 등을 이용한 좀돌날, 찌르개 등 약 8,000점에 가까운 유물이 출토되어 석기 제작과 복원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다른 유적에서는 대부분 빈약한 출토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유물조합 등으로 미루어 주로 후기 구석기 이후의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를 통해 볼 때, 구석기 시대 한반도의 중심은 중부 지방이었으며, 차츰 그 범위를 남쪽으로 확장시켜 후기 구석기 시대가 되면서 남해안 지역까지 확장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어지는 신석기 시대에는 남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유적이 확인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직 발견된 예가 없어 김해 지역의 구석기에 대한 설명은 어려우나 주변의 밀양, 함안 등 지역에서 발견 예들을 볼 때 앞으로의 조사나 연구에 따라 김해 지역에서 중요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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