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4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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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 柳下里 磨崖佛 |
영어공식명칭 | Rock-carved Buddha in Yuha-ri, Gimha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의길 179[구산동 218-2]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연진 |
이전 시기/일시 | 1998년 - 김해 유하리 마애불 경상남도 김해시 유하동 산34-1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 232 국립김해박물관 앞 도로변으로 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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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장처 | 김해 유하리 마애불 소장처 -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의길 190[구산동 232] 국립김해박물관 앞 도로변 |
원소재지 | 김해 유하리 마애불 원소재지 - 경상남도 김해시 유하동 산34-1 |
성격 | 마애불 |
재질 | 돌 |
크기(높이) | 60㎝[마애불 1]|43㎝[마애불 2]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 국립김해박물관 앞 도로변에 있는 고려 후기 마애불.
[개설]
김해 유하리 마애불은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면 유하리[현 경상남도 김해시 유하동] 산 정상부에 있던 2기의 마애불이다. 1998년 김해시·군 통합 상수도 공사로 배수지가 건립되면서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 232번지 국립김해박물관 앞 도로변으로 옮겨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조사 당시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원래 5기의 마애불이 있었다고 하나 이미 현장이 많이 파괴되어 2기의 마애불만 찾을 수 있었다.
[형태]
모두 2구의 마애불로 바위에 고부조로 불상을 조각하였다. 첫 번째 마애불은 높이 60㎝의 감실을 파고 불상을 새겼으며 높이 60㎝, 폭 30㎝, 무릎 폭 52㎝이다.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하여 정확하게 알아보기가 어렵다. 머리는 나발 표현이 없는 소발이며 육계는 확인되지 않는다. 얼굴은 둥글고 이목구비는 마모되어 확인되지 않는다. 목에는 삼도가 옅게 표현되어 있으며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온다. 무릎이 낮고 상체가 길며 머리가 18㎝로 신체에 비해 큰 편이다. 법의는 양어깨를 걸친 통견으로 옷 주름을 두껍게 표현하였고, 가슴에 한 줄의 선으로 승각기를 표현하였다. 왼손은 손바닥을 위쪽으로 하여 배꼽 앞에 대고, 오른손은 무릎에서 손바닥을 아래로 하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으며, 항마인을 한 손에는 파손된 보주가 있어 약사여래로 추정된다. 상체와 비교하면 하체의 표현은 매우 간략한데, 이는 공간이 협소한 탓으로 보인다.
두 번째 불상은 불상 주변을 65㎝ 높이로 얕게 판 후 고부조로 불상을 조성하였다. 불상 높이 43㎝, 어깨 폭 16㎝, 무릎 폭 42㎝, 얼굴 높이 14㎝로 첫 번째 마애불과 비교하면 마멸이 더 심하다. 소발의 머리에 육계는 보이지 않으며 양 귀는 길게 어깨까지 내려온다. 목에는 한 줄의 삼도를 표현하였으며 왼쪽 어깨에서 팔꿈치까지는 파손되었다. 법의는 양어깨를 덮은 통견이며 가슴 아래 두 단의 승각기 옷 주름을 표현하였다. 왼손은 촉지인을, 오른손은 오른팔에 바짝 붙여 엄지손가락과 둘째 손가락을 맞댄 아미타 수인을 하고 있다. 대좌는 생략하였으며 다리 아랫부분은 정확히 보이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김해 유하리 마애불은 비슷한 크기와 형태를 하고 있어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존 조사에서 2기 외 3기의 마애불이 더 있었다는 증언으로 보아 약사여래를 포함한 사방불의 개념으로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제작 시기는 불상이 많이 마모되어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우나 간결한 옷 주름의 표현, 고부조이지만 자연스럽지 못한 표현 기법 등에서 고려 시대 지방에서 조성된 석불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