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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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州 李氏 |
영어공식명칭 | Jeonju Yissi|Jeonju Yi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광철 |
본관 | 전주 이씨 본관 - 전라북도 전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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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전주 이씨 집성지 - 경상남도 김해시 관동동 덕정마을 |
성씨 시조 | 이한 |
[정의]
이한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김해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이한(李翰)을 시조로 삼는 전주 이씨(全州 李氏)는 자손이 번성하여 수많은 지파로 나누어져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전주 이씨가 김해 지역으로 입향한 시기는 17세기 초로 보이며, 이 후 가계가 분화하면서 현재 김해시 인구 분포에서 김해 김씨, 밀양 박씨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인구를 자랑한다. 김해시 관동동 덕정마을에 전주 이씨 집성촌이 있다.
[연원]
전주 이씨는 신라 때 사공(司空)을 지냈다고 하는 이한을 시조로 삼는다. 조선 왕조를 개창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는 이한의 22세손이다. 전주 이씨는 대소 120여 파로 갈라져서 세계(世系)를 이어 왔는데, 지파의 분화 시기에 따라 세 갈래로 구분된다. 첫째는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 이전 시기에 형성된 지파로, 시조의 14세손 이궁진(李宮進)의 둘째 아들 이단신(李端信)으로부터 시작되는 시중공파(侍中公派), 15세손 이용부(李勇夫)의 둘째 아들 이거(李琚)를 파조로 하는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17세손 이양무(李陽茂)의 셋째 아들 이영습(李英襲)을 파조로 하는 주부공파(主簿公派)가 이들이다. 둘째는 이안사 이후 태조 이성계 이전에 생긴 지파로, 이안사의 아들 이안천(李安川)·이안원(李安原)·이안풍(李安豊)·이안창(李安昌)·안흥대군(安興大君) 파와 익조(翼祖) 이행리(李行里)의 아들 이함녕(李咸寧)·이함창(李咸昌)·이함원(李咸原)·이함천(李咸川)·이함릉(李咸陵)·이함양(李咸陽)·함성대군(咸城大君) 등 12파, 도조(度祖) 이춘(李椿)의 아들 완풍대군(完豊大君)과 의안대군(義安大君) 등을 포함한 18대 군파가 이들이다. 셋째는 조선 건국 후 태조 대 이후에 나누어진 지파로, 진안대군(鎭安大君) 이방우(李芳雨)를 포함하여 25대군과 74군을 중시조로 하는 99개 파인데, 결혼 전에 사망하거나 자손이 없는 대군(大君)이 20명 정도나 있어 실제 그 수는 줄어들 것이다.
[입향 경위]
조선 시대 전주 이씨가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의 성씨로 소개된 지리서로는 1895년(고종 32) 간행 『영남읍지(嶺南邑誌)』에 포함된 『김해읍지(金海邑誌)』가 처음이다. 1899년에 편찬된 『김해군읍지(金海郡邑誌)』에서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1730년대에 편찬한 것으로 보이는 『분성여지승람신증초(盆城輿地勝覽新增抄)』 성씨조에는 재령 이씨와 인천 이씨는 올라와 있지만, 전주 이씨는 찾을 수 없다. 이후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1757~1765]나 『김해부읍지(金海府邑誌)』,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1832]의 성씨조에서 모두 이씨를 수록하고 있지만 본관을 표시하지 않아 전주 이씨가 포함되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런데 김해향교(金海鄕校)의 향안(鄕案)에는 전주 이씨 출신으로 이른 시기에 입록(入錄)한 인물들이 보인다. 1613년(광해군 5) 11월의 현감 이번(李蕃), 1645년(인조 23) 11월의 충의위(忠義衛) 이정환(李廷桓), 1649년 11월의 충의위 이정식(李廷植), 1678년(숙종 4) 11월의 선전(宣傳) 이먹(李薁)과 출신(出身) 이운(李芸), 1725년(영조 1) 11월의 유학(幼學) 이원인(李元仁), 1853년(철종 4) 12월 4일의 유학 이윤복(李允馥)과 이윤옥(李允沃), 1894년(고종 31) 3월 22일의 유학 이원(李垣)과 이경복(李慶復), 이광복(李光復) 등이 이들이다. 적어도 이들 자료에 근거한다면 전주 이씨가 김해 지역에 입향한 시기는 적어도 16세기 말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로 올려 볼 수 있다.
[현황]
1929년에 간행된 『김해읍지』 성씨조에는 당시 김해 지역에 거주하는 성씨를 면리별로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전주 이씨는 김해면 이동(二洞), 장유면 덕정리(德亭里), 생림면 북곡리(北谷里), 대저면 덕두리(德斗里) 등에 주로 거주하는 것으로 나온다. 1934년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는 전국의 지역별 성씨의 종류와 가구 수, 집성촌 등을 소개하고 있으며, 김해군에는 2만 2983가구, 108개의 성씨가 분포한 것으로 나와 있다. 당시 김해 김씨(金海 金氏)를 비롯하여 30개의 성씨가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으나 전주 이씨 집성촌은 보이지 않는데, 당시에도 『김해읍지』[1929]에서 전주 이씨의 세거지로 소개된 곳들에서 거주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2000년도 통계청의 성씨 본관별 가구 및 인구 통계에 따르면, 당시 김해시 인구는 9만 8985가구에 33만 829명이었고, 여기에 225개의 성과 2,724개의 본관 성씨가 있었다. 이 가운데 100가구 이상 거주하는 성씨는 김해 김씨 등 128개이며, 전주 이씨는 3,351가구에 1만 1330명으로 김해 김씨[1만 3287가구 4만 3345명], 밀양 박씨[8,097가구 2만 6878명], 경주 이씨[3,899가구 1만 2951명]에 이어 네 번째이다.
2015년 통계청의 ‘인구 주택 총조사’에서는 가구 수는 없고 본관 성씨별 인구수만 조사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당시 김해시 인구는 51만 2517명, 성씨는 143개, 본관은 820여 개로 집계되었다. 이 중 100가구로 추산되는 340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성씨는 김해 김씨를 비롯하여 169개로 확인되며, 전주 이씨는 1만 6882명으로, 인구 규모에서는 김해 김씨[6만 1341명], 밀양 박씨[3만 9765명]에 이어 세 번째이다. 전주 이씨 집성촌이 김해시 관동동 덕정마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