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6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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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裵元龍 |
영어공식명칭 | Bae Wonry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박상현 |
활동 시기/일시 | 1384년 - 배원룡 계림부윤 부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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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임|활동지 | 계림부 - 경상북도 경주시 |
묘소|단소 | 배원룡 묘소 - 경상남도 김해시 화목동 |
사당|배향지 | 칠산재 - 경상남도 김해시 칠산로237번길 46-40[화목동 1334] |
성격 | 관인 |
성별 | 남 |
본관 | 분성 |
대표 관직 | 병부상서 겸 도원수 |
[정의]
고려 후기 관인이자 경상남도 김해를 본관으로 하는 분성 배씨의 시조.
[가계]
배원룡(裵元龍)의 본관은 김해의 옛 이름인 분성(盆城)이다. 고려 태조의 배향공신(配享功臣) 배현경(裵玄慶)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가락군 배사혁(裵斯革)이다.
[활동 사항]
배원룡은 1384년(우왕 10)에 계림부윤이 되었다. 본래 유능한 관리로 이름이 있었으나, 염흥방(廉興邦)을 양부로 삼고 집을 바쳤다. 계림부윤이 된 후 백성을 침탈하였는데, 심지어 쇠스랑까지 실어 가져가기에 이르렀다. 이에 사람들이 ‘철문어부윤(鐵文魚府尹)’이라 불렀다고 한다. 다리가 여덟 개인 문어가 쇠스랑 모양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오명을 남기기도 하였으나, 계림부윤으로 재임하면서 왜적 4급을 베는 등 왜구 토벌에 공을 세웠다.
관직은 병부상서 겸 도원수에 이르렀으며, 왜의 우두머리를 친 공로로 분성군(盆城君)에 봉하여졌다. 이후 분성 배씨의 수관조(受貫祖)가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정몽주(鄭夢周)에게 「산성기(山城記)」를 청하였다고 한다.
[묘소]
배원룡의 무덤은 경상남도 김해시 화목동 칠산재 인근에 있다. 칠산재는 수관조 배원룡과 중시조 등을 봉향하고 위해 지어진 분성 배씨 문중 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