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6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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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係熙 |
영어공식명칭 | Kim Gyehee |
이칭/별칭 | 회숙(晦叔),강은(岡隱),퇴은(退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상현 |
출생 시기/일시 | 1400년 - 김계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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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41년 - 김계희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455년 - 김계희 원종공신 3등 녹훈 |
활동 시기/일시 | 1463년 - 김계희 인순부윤 제수 |
출생지 |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퇴래리 퇴은마을 |
부임|활동지 | 나주목 - 전라남도 나주시 |
사당|배향지 | 동학사 숙모전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동학사1로 462[학봉리 789]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김해 |
대표 관직 | 중추원부사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문신.
[가계]
김계희(金係熙)[1400~?]의 본관은 김해이다. 자는 회숙(晦叔)이고, 호는 강은(岡隱)·퇴은(退隱)이다. 할아버지는 김방려(金方礪)이고, 아버지는 김순생(金筍生)이다. 아들은 김강의(金剛毅)이며, 손자는 전라도관찰사·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김극검(金克儉)이다.
[활동 사항]
김계희는 1400년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퇴래리 퇴은마을에서 태어났다. 1441년(세종 23) 41세의 늦은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1447년(세종 29)에 주서(注書)로 있었고, 1450년(문종 즉위년)에는 경상도도사(慶尙道都事)에서 물러나고자 하였으나 문종이 허락하지 않았다. 1452년(단종 1)에 좌랑으로 종부판관(宗簿判官)을 겸하였으며, 사간원의 우헌납(右獻納)과 좌헌납(左獻納)을 역임하였다. 1455년(세조 1) 원종공신(原從功臣) 3등에 녹훈되었고, 이후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使), 형조참의, 공조참의, 이조참의,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 등을 제수받았다.
1462년(세조 8)에는 이조참판으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63년(세조 9) 인순부윤(仁順府尹)이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목민심서』에 따르면 나주목사로도 재임하였는데, 은혜로운 정치를 베풀고 학교를 크게 일으켰다고 한다. 이에 백성들이 김계희를 사모하여 죽은 뒤 보(寶)를 세워 기일마다 명륜당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동인시화(東人詩話)』에는 부모 봉양을 위해 벼슬을 버리고 김해로 돌아가는 김계희를 전송하는 집현전 학사의 시가 있다. 김계희가 김해에서 기거한 정자인 한림정(翰林亭)에서 ‘한림’이라는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학문과 저술]
『신증동국여지승람』 「순천도호부(順天都護府)」 편에 김계희의 제영시(題詠詩)가 있다.
[상훈과 추모]
김계희는 충청남도 공주시의 동학사 숙모전(肅慕殿)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