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6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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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銚 |
영어공식명칭 | Kim Jo |
이칭/별칭 | 공간(恭簡),자화(子和),졸재(拙齋),김빈(金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상현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문신.
[가계]
김조(金銚)[?~1455]의 본관은 김해이다. 자는 자화(子和)이고, 호는 졸재(拙齋)이다. 처음 이름은 ‘빈(鑌)’이었으나, 세종이 궁중 여관을 부르는 소리와 비슷하다고 하여 ‘조(銚)’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지낸 김진문(金振門)의 아들이다. 아들로 김여(金輿)와 김윤(金輪)을 두었다.
[활동 사항]
김조는 1411년(태종 11)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외직과 내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서사(書史)를 좋아하였으며, 역산(曆算)에 정통하였다. 갑인자(甲寅字)의 주조, 간의대 및 자격루 제작에 참여하여 세종 때 과학 발달에 기여하였다. 1447년(세종 29)에는 정조사(正朝使)로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48년 병조참판으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병조의 일을 철저히 감독하지 못하여 문책을 받기도 하였다. 1450년에 형조참판으로 복직되었고, 1451년(문종 1) 사은부사(謝恩副使)로서 명나라에 다녀왔다. 계유정난[1453년] 이후 예조판서 및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 등을 역임하였다. 1455년(세조 1)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로서 사망하였는데, 『세조실록』에 졸기(卒記)가 남아 있다.
[학문과 저술]
김조는 영릉(英陵)의 비음기(碑陰記)를 지었으며, 『고려사절요』·『세종실록』·『문종실록』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