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6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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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潛 |
이칭/별칭 | 영민(永敏),우헌(寓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신은제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유배된 문신.
[가계]
홍잠(洪潛)[1524~1589]의 본관은 남양이다. 자는 영민(永敏)이고, 호는 우헌(寓軒)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숭록대부 판중추부사 홍언수(洪彦修)이고, 할아버지는 판중추부사 홍약(洪約)이다. 아버지는 홍형로(洪亨老)이고, 어머니는 이조참의 김덕신(金德信)의 딸이다. 아들은 홍만복(洪蔓復)이고, 며느리는 의령남씨 남귀린(南貴麟)의 딸이다. 손자 홍여한(洪汝漢)은 김해부사를 역임하였다. 딸은 정사준(鄭思竣)과 혼인하였는데, 정사준은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 때 이순신 휘하에서 군관으로 활약하였다.
[활동 사항]
홍잠은 1576년(선조 9)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였고, 관직은 통정대부 강원도관찰사에 이르렀다. 1589년(선조 22), 종계변무(宗系辨誣)[조선 개국 초부터 선조 때까지 약 200년 동안 명나라 서적에 조선 왕조의 조상이 잘못 기록되어 있는 것을 고쳐 달라고 주청하던 사건]와 관련하여 극언으로 상소하다가 김해에 유배되었다. 김해로 유배된 뒤에 곧 사면을 받았으나, 5일 만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홍잠의 후손들은 이후로 김해 지역에 세거하며 남양 홍씨 우헌 문중을 이루었다.
[묘소]
홍잠의 무덤은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범방마을 금병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