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7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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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潤松 |
이칭/별칭 | 허헌호(許憲虎)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배병욱 |
출생 시기/일시 | 1919년 7월 15일 - 허윤송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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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42년 - 허윤송 광복군 입대 |
활동 시기/일시 | 1977년 - 허윤송 대통령표창 수여 |
몰년 시기/일시 | 1985년 11월 16일 - 허윤송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허윤송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경상남도 김해시 삼정동 |
거주|이주지 | 경상남도 김해시 봉황동 |
활동지 | 중국 허난성 정저우 |
묘소 |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허윤송(許潤松)[1919~1985]은 1919년 7월 15일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삼정동에서 허만순(許萬洵)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명은 허헌호(許憲虎)이다. 1942년 8월 유원해(柳原海)의 안내로 허난성[河南省] 정저우[鄭州]로 이주하였다. 정저우에서는 광복군 제1지대 제1구대장 김준(金俊)이 군사를 모집하고 있었는데, 허윤송은 유원해·유시훈(柳時薰)·김홍도(金洪道)·유시보(柳時保) 등과 광복군에 입대하였다. 입대 후 허난성 정저우, 후베이성[湖北省] 라오허커우[老河口] 등지에서 훈련받았다.
일본군은 1944년에 태평양 방면의 전세가 위급해지자 대륙타통작전(大陸打通作戦)을 통해 중국 전선을 우선 정리하고자 4월에 정저우·뤄양[洛陽]을 공격하였다. 광복군에서는 중국국민당 제5전구사령부의 요청으로 구대장 김준의 지휘 아래 총 15명의 공작반장과 대원들이 작전에 투입되었고, 허윤송도 대원으로서 참가하였다. 허윤송은 동지들과 선전 공작 및 적 정보 수집, 일본군 포로 심문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으며, 1944년 7월에 라오허커우의 본대로 귀환하였다.
1945년 4월 하순에는 제1구대의 본대가 후베이성 균현(均縣)[현재 단장커우(丹江口)]으로 옮겼는데, 허윤송도 함께 옮겨갔다. 허윤송은 김창국(金昌國)과 안후이성을 거쳐 진푸철도[津浦鐵道][톈진(天津)-푸커우(浦口)] 방면에서 임무를 수행하였다. 7월에는 한재갑(韓載甲)이 맡았던 안후이성 입황(立煌) 지구의 임무를 인계받아 수행하였다. 해방 후에는 귀국하여 지금의 김해시 봉황동에서 농사를 지었으며, 1985년 11월 16일에 사망하였다.
[묘소]
허윤송의 무덤은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오학산에 있다고 전한다.
[상훈과 추모]
허윤송은 1977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고,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