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7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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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富根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전성현 |
출생 시기/일시 | 1925년 8월 22일 - 강부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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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43년 - 강부근 경남학생건국회 결성 |
활동 시기/일시 | 1944년 7월 - 강부근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44년 11월 25일 - 강부근 부산지방법원 징역 단기 1년 장기 3년 선고 |
활동 시기/일시 | 1972년 12월 - 강부근 통일주체국민회의 욕지면선거구 대의원 당선 |
몰년 시기/일시 | 1982년 6월 19일 - 강부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2년 8월 - 강부근 대통령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강부근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경상남도 통영시 욕지면 동항리 |
학교|수학지 | 김해공립농업학교 - 경상남도 김해시 금관대로 1239[외동 743] |
묘소 | 강부근 묘소 - 경상남도 통영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강부근(姜富根)[1925~1982]은 1925년 8월 22일 지금의 경상남도 통영시 욕지면 동항리에서 태어났다. 김해공립농업학교[현 김해생명과학고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3년, 마산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고향 친구 조우식·김희구 등과 함께 일제의 식민지 교육 정책을 비판하였다. 또, 중국 및 미국과 전쟁 중인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며 독립 의식을 키워갔다. 강부근은 다가올 독립에 대비하여 마산중학교를 토대로 동지를 포섭하는 한편, 항일 결사 조직인 경남학생건국회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연합군 측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일본 해군의 요새지인 마산과 진해 방면 군사 시설을 탐지하는 등 항일 활동을 하였다.
경남학생건국회는 강부근이 다니던 김해공립농업학교 학생들까지 참여하면서 1944년 경남학생건국위원회로 확대 개편되었다. 하지만 1944년 6월에 김해공립농업학교의 일본인 학생이 밀고하면서 경남학생건국위원회 조직이 드러났다. 강부근 등은 1944년 7월에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11월 25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및 육해군 형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1년, 장기 3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김천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해방을 맞아 출옥하였다.
해방 이후 고향 통영의 원량국민학교[현 원량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여러 학교에서 교감과 교장을 역임하였다. 1972년 12월, 초대 통일주체국민회의 욕지면선거구 대의원에 무투표 당선되었고, 1978년 제2대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1982년 6월 19일 사망하였다.
[묘소]
강부근의 무덤은 경상남도 통영시에 있다.
[상훈과 추모]
강부근은 1982년 8월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