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녹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759
한자 金綠珠
영어공식명칭 Kim Nokju
이칭/별칭 김록주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엄경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8년연표보기 - 김녹주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07년 - 김녹주 김정문 문하 수학
활동 시기/일시 1916년 - 김녹주 송만갑협률사 입단
몰년 시기/일시 1928년연표보기 - 김녹주 사망
출생지 경상남도 김해시
성격 판소리 명창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판소리 명창.

[활동 사항]

김녹주(金綠珠)[1898~1928]는 10세 때부터 진안 출신의 판소리 명창 김정문(金正文)[1887~1935]에게 판소리를 배웠으며, 어린 나이에 이미 소녀 명창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당시 최고의 명창으로 알려진 송만갑(宋萬甲)[1865~1939]으로부터 소리를 전수받기도 하였다. 1916년부터 장판개(張判盖)의 주선으로 송만갑협률사에 들어가 공연하였다. 송만갑협률사는 송만갑과 송만갑의 문도가 중심이 되어 만든 공연 단체로, 주로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에서 순회공연하였다.

1922년 무렵부터는 동생인 김홍주·이화중선·이중선 등과 단체를 조직하여 지방으로 공연을 다녔다. 이들과 강소춘·배설향 등은 일제 강점기의 뛰어난 판소리 명창으로 불리었는데, 그중에서도 김녹주가 최고로 꼽혔다. 29세부터 조선명창대회·일류명창대회 등 대회식 공연에 참여하였다. 이 당시 「소상팔경」, 「심청가」 중 ‘중타령’을 음반으로 남겼다. 이후 대구에서 소리 선생으로 활동하다가 1928년 30세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남성적인 음성이었으며, 성량이 풍부하였다고 한다.

[저술 및 작품]

김녹주는 음반 취입이 본격화되기 전에 사망하여 음반 수가 적다. SP음반의 짧은 「소상팔경」, 「춘향가」 중의 ‘사랑가’, 「심청가」 중의 ‘중타령’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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