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760
한자 金英椿
영어공식명칭 kim Youngchun
이칭/별칭 김종재(金宗才)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종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8년 6월 29일연표보기 - 김영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8년 - 김영춘 콜롬비아레코드 전속 가수 데뷔
몰년 시기/일시 2005년연표보기 - 김영춘 사망
출생지 경상남도 김해시 어방동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김해동광보통학교 - 경상남도 김해시 호계로500번길 15-15[동상동 534]지도보기
학교|수학지 김해농업고등학교 - 경상남도 김해시 금관대로 1239[외동 743]지도보기
성격 대중가수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대중음악가.

[개설]

김영춘(金英椿)[1918~2005]은 「홍도야 우지마라」로 잘 알려진 대중음악가이다. 본명은 김종재(金宗才)이다. 1918년 6월 29일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어방동에서 아버지 김치관과 어머니 박금년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김해동광보통학교[현 김해동광초등학교]와 김해농업고등학교[현 김해생명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활동 사항]

김영춘은 1938년 조선일보사와 콜롬비아레코드사가 공동 주최한 신인 가수 선발 콩쿠르에 입상하고, 1938년 11월 「항구의 처녀설」로 데뷔하였다. 콜롬비아가극단의 대표를 역임하였으며, 1939년에 「홍도야 우지마라」를 불렀다. 당시 「홍도야 우지마라」 음반 판매량이 10만 장이 넘었다고 전한다. 한편 김영춘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국 가요 「아류산 천리」를 비롯하여 태평양전쟁을 담은 「동아의 여명」 등을 불러 친일 논란도 일고 있다.

김영춘의 동생 김복득은 오빠 김영춘이 조용한 성격이고,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하였다고 하였다. 김영춘의 아들 김무술은 “아버지는 고향 김해에 대한 애착이 많았다. 늘 고향 이야기를 하셨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김해를 수차례 다녀왔다”라고 하였다. 2005년 교통사고를 당하였고, 2006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김영춘은 「항구의 처녀설」, 「홍도야 우지마라」 외 30여 곡의 노래를 불렀다.

[상훈과 추모]

김영춘의 가수 데뷔 60주년 기념 공연이 1998년 김해시 문화체육관에서 열렸다. 이때 김해시로부터 공로패를 받았다. 이외에 문화관광부장관상[1996], 제35회 가수의날 KBS공로대상[2001]을 받았으며, 2004년 제4회 연예예술인스승추대식에서 가수 부문 스승으로 추대되었다. 그동안 받은 공로패와 관련 자료들은 모두 김해시에 기탁되었다.

2017년 경상남도 김해시 어방동에 김영춘 노래비가 세워졌다. 이후 2019년에도 김영춘노래비추진위원회가 가야테마거리에 ‘김영춘 노래비 설치 사업’을 추진하였는데, 친일 논란으로 무산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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