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9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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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劇場 |
영어공식명칭 | Theatre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허영호 |
[정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공연이나 영화 상영을 위하여 무대와 객석 등을 설치한 건물이나 시설.
[개설]
전근대 시기 극장은 연극이나 대중 행사를 위한 시설이었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점차 공연이나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로 변화하였다. 한국에 근대식 연극이 들어온 것은 대략 1890년대이고, 김해시와 가까운 부산광역시 지역에서는 1910년대에 최초의 근대식 극장이 일본 조계지 내에서 운영된 것으로 확인된다.
[변천]
일제 강점기 초기에는 창고나 사무실, 혹은 가설 극장에서 공연이 이루어지기는 하였지만 이런 곳을 정식 극장으로 보기는 어렵다. 김해 지역 최초의 극장은 1929년 지금의 김해시 서상동 왕릉공원 옆에 있던 김해극장이었다. 김해극장은 상인이었던 김무일과 배봉을이 8,000여 원의 공사비를 들여 1928년 10월에 착공하여 다음 해 7월 24일에 낙성하고, 27일에 개업하였다. 초창기의 김해극장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일본의 가부키식으로 되어 있어 내부 바닥에는 다다미가 깔려 있었다. 광복 이후 현재와 같은 일반 극장의 형태로 변화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시설은 상당히 낙후된 상태였다.
1961년 김해극장 인근에 김명수와 조봉영이 2,000만 환을 투입하여 금보극장을 건립하였다. 1961년 3월에 착공하여 6월에 건평 826㎡[250평]에 현대식 2층 건물로 준공하였다. 금보극장은 1,500석 규모로 나름 최신 시설을 갖추어 주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금보극장은 개관 기념일에 맞춰 가수, 코미디언들을 초청하여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쇼 행사도 개최하였다. 이때는 김해 지역 전체가 떠들썩할 정도로 주민들의 관심이 많았는데, 극장 측은 지역의 각 업체나 상회, 양장점 등에서 물품을 협찬받아 경품으로 내걸었다. 경품으로는 전축과 자전거가 큰 편에 속하며, 밥솥과 냄비 등 주방용품이 많았다. 멀리 상동, 생림, 장유 등지에서 온 관람객들은 동신버스 막차를 타고 귀가하였다고 전한다.
김해읍에 김해극장과 금보극장이 있었다면 진영 지역에는 광복 후에 진영극장과 중앙극장이 설립되었다. 진영극장은 1947년 1월에 지금의 진영 제2구시장에 건립되었고, 1963년에 개보수 작업을 거쳐 다시 개장하였다. 진영극장은 처음 설립될 때부터 공회당의 기능도 겸하여 연극 공연이나 영화 상영뿐 아니라 진영 지역의 각종 행사장으로도 사용되었다. 중앙극장은 1960년대 초반 최상조가 설립하였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김해 지역의 극장들은 단관 형식으로 고유한 운영 체제와 특색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2000년대가 되면서 전국적 혹은 다국적 체인망을 가진 다중 영화관이 확장되면서 기존의 김해 영화관은 점차 몰락하였다.
[현황]
2024년 5월 기준 김해시에는 CGV 김해, CGV 김해장유, CGV 김해율하와 롯데시네마 김해부원, 롯데시네마 김해아울 같은 복합 영화관이 개관하여 운영되고 있다. 또한 회현동 소극장과 봉황예술극장 등도 설립되어 김해 시민의 문화 생활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