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122 |
---|---|
한자 | 佳山里 |
영어공식명칭 | Gasa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가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미영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가산리는 독뫼 주변에 자연 마을인 가산(佳山)과 신전(新田)이 형성되어 있다.
[명칭 유래]
가산리는 낙동강 변에 만들어진 작은 독뫼들이 낙동강 물이 넘나들 때 따로 떨어진 작은 동산들처럼 아름다워서 붙여진 자연 마을 이름[가산]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가산의 북쪽에 굶주린 노루가 들판으로 내려오는 형상[기록하야형(飢鹿下野形)]의 명당이 있으며 큰 부자가 나올 터라고 한다. 신전은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으로 ‘새밭[새빤]’이라고도 하였으며 가산의 서쪽 제방 가에 있다.
[형성 및 변천]
가산리는 조선 후기까지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의 하북면(下北面) 지역이었다. 하북면이 속한 김해 지역은 1895년(고종 32) 23부제가 시행되면서 진주부 김해군이 되었고, 1896년 13도제가 시행되면서 경상남도 김해군으로 개편되었다. 당시 하북면에서 상북면(上北面)이 분리되었는데, 가산리는 화포천의 북쪽에 자리하여 가동리와 장방리, 시산리와 함께 상북면 지역이 되었다.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개편 때 상북면의 4개 리와 하북면의 7개 리를 병합하여 김해군의 14개 법정면 중 하나인 이북면으로 하고, 가산리를 이북면의 법정리로 하였다. 이북면은 1981년 7월 1일 김해군과 김해시가 분리될 때 김해군의 관할로 남았다. 1984년 가산리에서 경지 정리가 실시되었다. 1987년 1월 1일 이북면이 한림면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95년 5월 10일 김해군과 김해시가 통합하여 김해시 한림면 가산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가산리는 봉화산 북쪽의 잔구성 산지 지역으로, 낙동강 제방 공사를 하기 전까지는 낙동강 물이 범람하면 독뫼만 섬처럼 떠 있었다고 한다. 가산리의 중앙부에 있는 독뫼는 지대가 높은 만큼 홍수의 위험이 적어서 주변에 가산과 신전이 형성될 수 있었다. 가산리의 서쪽에서 주천강이 북류하며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현황]
2023년 12월 31일 기준 가산리의 면적은 1.78㎢이며, 167가구, 291명[남자 155명, 여자 13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자연 마을인 가산은 독뫼산으로도 불리며, 200년 전에는 느티나무와 잣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서쪽에는 구지골, 금창들이 있고, 가산과 구지골 사이에는 명근늪이 있는데 가뭄 때면 기우제를 지낸다고 한다. 가산리의 남쪽 지역과 신전, 가산 주변에 있는 공장들은 1990년대 이후 대도시의 공업 기능 교외화가 시작되면서 이전하여 자리 잡은 것들이다. 이들 공장들로 인하여 가산리에도 남초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가산에 가산초등학교가 있었으나 폐교한 후 ‘참빛천연염색’이라는 섬유 가공 공방이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