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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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谷里 |
영어공식명칭 | Geumgok-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금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미영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4월 1일 - 경상남도 김해군 생림면 금곡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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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83년 2월 15일 - 경상남도 김해군 생림면 금곡리에서 경상남도 김해군 이북면 금곡리로 개편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4년 - 경상남도 김해군 이북면 금곡리 경지 정리 실시 |
변천 시기/일시 | 1987년 1월 1일 - 경상남도 김해군 이북면 금곡리에서 경상남도 김해군 한림면 금곡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5월 10일 - 경상남도 김해군 한림면 금곡리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금곡리로 개편 |
성격 | 법정리 |
면적 | 6.83㎢ |
가구수 | 283가구 |
인구[남/여] | 476명[남 228명/여 248명]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금곡리는 작약산[377.7m]의 분수령을 경계로 서쪽 사면에 자연 마을들이 자리 잡고 있다.
[명칭 유래]
금곡리에는 고려 시대부터 자여도(自如道)에 속하는 금곡역(金谷驛)이 있다가 조선 후기 지금의 김해시 생림면 봉림리로 이전하였는데, ‘금곡’ 지명은 이 금곡역에서 유래하였다. 금곡리 자연 마을인 오서는 풍수지리상 금까마귀가 알을 품고 있는 금오포란형(金烏抱卵形)의 명당 자리가 있어 효자와 충신이 나올 터라 ‘오서(烏棲)’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일제 강점기에 ‘까마귀 오(烏)’ 자가 이름에 들어가면 흉조라고 하여 ‘오서(吾西)’로 개칭하였다. 정촌은 열녀 최씨(崔氏)의 정려가 있었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모정은 조선 후기 인조(仁祖) 때 증이조판서 노한석이 명나라가 멸망하자 창녕에서 이곳으로 이거하여 대대로 살았다고 하며, 명나라의 마지막 연호인 숭정(崇禎)을 따서 마을 이름을 ‘모정’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금곡리는 조선 후기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의 생림면 지역이었다. 생림면이 속한 김해 지역은 1895년(고종 32) 23부제가 시행되면서 진주부 김해군이 되었고, 1896년 13도제가 시행되면서 경상남도 김해군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개편 때 생림면에 김해군 하북면 용덕리 일부와 경상남도 밀양군 하남면 삼랑리 일부를 병합하여 김해군의 14개 법정면 중 하나인 생림면으로 하고, 오서와 모정을 합하여 생림면의 법정리인 금곡리로 하였다. 생림면은 1981년 7월 1일 김해군과 김해시가 분리될 때 김해군의 관할로 남았다. 1983년 2월 15일 금곡리가 김해군 이북면에 편입되었다. 1987년 1월 1일 이북면이 한림면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95년 5월 10일 김해군과 김해시가 통합하여 김해시 한림면 금곡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금곡리 북쪽 작약산에서 발원한 하천들이 서쪽으로 흘러 산지를 침식하여 계곡을 형성하면서 화포천 하류에 합류한다. 금곡리의 자연 마을들은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인 곡구에 형성되어 있으며, 금곡리 서쪽에서 화포천이 북류하며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현황]
2023년 12월 31일 기준 금곡리의 면적은 6.83㎢이며, 283가구, 476명[남자 228명, 여자 24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자연 마을로 오서, 정촌, 모정이 있다. 금곡리는 경사지에 자리한 지역이라 개발이 늦은 지역 중 하나인데, 1990년대 이후 인근 대도시 공업 기능의 교외화로 곳곳에 공장이 들어서고 천수답이 점점 사라지면서 가구 수와 인구도 줄어드는 추세이다. 정촌에 금곡초등학교가 있었으나 폐교하였으며, 그 자리에 2020년 3월 1일 금곡무지개고등학교가 개교하였다가 2022년 3월 1일 김해금곡고등학교로 개칭하였다. 예전에는 모정 남동쪽 옆으로 마산선이 지나갔으나 현재는 그보다 더 남동쪽으로 철로를 이설하여 경전선이 지나다닌다. 과거 철로에는 태양광 발전을 위한 시설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