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139
한자 生鐵里
영어공식명칭 Saengcheol-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생철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미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4월 1일 - 경상남도 김해군 생림면 생철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95년 5월 10일 - 경상남도 김해군 생림면 생철리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생철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6.98㎢
가구수 352가구
인구[남/여] 614명[남 322명/여 292명]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생철리(生鐵里)생림면의 북쪽 중앙에 자리하여 북쪽과 동쪽, 남쪽은 생림면마사리안양리, 봉림리, 서쪽은 김해시 생림면 봉림리와 접한다. 고려 후기까지 철이 많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명칭 유래]

생철리는 철이 많이 생산되었기 때문에 지어진 지명으로 보이며, 쇠부리 또는 철취라고도 불렀다. 마현고개 북쪽에 있어 이작(二作)이라고도 하였다. 생을저(省乙渚)→생제을리(省諸乙里)→신포(新浦)→성포(省浦)→생철리로 마을 이름이 변화하였으며, ‘중심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성포는 ‘큰 모래톱에 있는 포구’를 뜻하는 의미로 이작들의 평야가 당시 하천가 모래톱으로 이루어져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작초등학교, 성포소류지, 생철못 등에 옛 지명이 남아 있다.

[형성 및 변천]

생철리는 1789년(정조 13) 편찬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의 생림면 지역으로 나온다. 생림면이 속한 김해 지역은 1895년(고종 32) 23부제가 시행되면서 진주부 김해군이 되었고, 1896년 13도제가 시행되면서 경상남도 김해군으로 개편되었다. 1904년(고종 41) 발간된 『경상남도 김해군 가호안(慶尙南道 金海郡 家戶案)』에는 생림이작면 생철리로 올라와 있고, 1911년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생림면 생철리로 나와 있다. 1912년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에도 생림면 생철리로 나오는데, 신포리가 생철리에 병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개편 때 생림면의 8개 리에 김해군 하북면 용덕리 일부 및 경상남도 밀양군 하남면 삼랑리 일부를 병합하여 김해군의 14개 법정면 중 하나인 생림면으로 하고, 생철리를 생림면의 법정리로 하였다. 생림면은 1981년 7월 1일 김해군과 김해시가 분리될 때 김해군의 관할로 남았다. 1995년 5월 10일 김해군과 김해시가 통합하여 김해시 생림면 생철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생철리를 감싸듯 동쪽은 무척산[702.1m], 서쪽은 작약산[377.7m]이 있다. 작약산의 동사면과 무척산의 서사면 지역은 하천에 의해 침식된 침식 분지를 이루고 있고, 이들 산록부에 마을이 자리한다. 무척산작약산에서 발원한 하천이 생철리의 중앙에서 북류하여 낙동강에 합류한다. 북쪽으로 갈수록 낙동강과 가까워지며 범람원 지역으로 평지가 넓어진다.

[현황]

2023년 12월 31일 기준 생철리의 면적은 6.98㎢이며, 352가구, 614명[남자 322명, 여자 29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자연 마을로 생철마을과 성포마을이 있다. 성포마을에 이작초등학교가 있고, 생철마을에 생림중학교, 경상남도교육청 낙동강학생교육원, 김해가락오광대 탈 전승관, 생림우체국, 생림면체육회가 있다. 생철리의 산록부에는 축산 농가가 많고, 북쪽 평야 지역은 수로를 따라 경지 정리가 잘 이루어져 벼농사가 행해진다. 남쪽 봉림농공단지가 확장되면서 생철리에도 공장들이 들어서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