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157
한자 余次里
영어공식명칭 Yeocha-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여차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4월 1일 - 경상남도 김해군 상동면 여차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95년 5월 10일 - 경상남도 김해군 상동면 여차리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여차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18.83㎢
가구수 247가구
인구[남/여] 494명[남 279명/여 215명]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여차리(餘次里)생림면의 북동쪽에 자리하여 북쪽은 낙동강을 경계로 경상남도 양산시와 경계를 이루고, 동쪽과 남쪽은 상동면감노리대감리, 우계리, 서쪽은 김해시 생림면사촌리, 봉림리, 생철리, 안양리와 접한다. 조선 시대부터 도기소(陶器所)가 있었던 마을이다.

[명칭 유래]

여차리의 명칭과 관련한 유래는 여러 가지이다. 먼저 ‘여차’의 한자음 ‘여(余)’가 상대방인 ‘너’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넘다’의 ‘너’를 표현하기 위하여 음을 빌려 쓴 글자라는 것이다. 무척산[702.2m], 시루봉[277.9m], 석룡산[493.7m] 등의 준령을 넘어야 이 마을에 올 수 있기 때문에 ‘산 너머의 다음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또 다른 설은 서쪽의 생림면에서 넘어오는 구불구불한 여덟막고개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설이다. 또 옛날 어떤 사람이 마을을 여덟 번 둘러본 끝에 명당을 찾았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도 전한다.

[형성 및 변천]

여차리가 속한 상동면은 고려 시대에 감물야향(甘勿也鄕) 지역이었다. 조선 전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감물야촌(甘勿也村)으로 나온다. 1469년(예종 1)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에 ‘여차리(余次里)’의 이름이 보인다. 조선 후기에는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의 상동면 지역이었다. 상동면이 속한 김해 지역은 1895년(고종 32) 23부제가 시행되면서 진주부 김해군이 되었고, 1896년 13도제가 시행되면서 경상남도 김해군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개편 때 상동면의 20개 리를 6개 리로 통폐합하였는데, 당시 여차리와 용당리(龍塘里), 후포리(後浦里), 용성리(龍城里), 학운리(鶴雲里)를 합하여 상동면의 법정리인 여차리로 하였다. 상동면은 1981년 7월 1일 김해군과 김해시가 분리될 때 김해군의 관할로 남았다. 1995년 5월 10일 김해군과 김해시가 통합하여 김해시 상동면 여차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여차리의 서쪽에는 무척산, 서남쪽에는 시루봉, 남쪽으로는 석룡산이 있으며, 시루봉과 석룡산에서 발원하는 여차천이 남서에서 북동으로 흘러 낙동강 본류로 이어진다. 여차천의 하상 활동으로 형성된 비옥한 곡간 평야 중심에 마을이 조성되었다.

[현황]

2023년 12월 31일 기준 여차리의 면적은 18.83㎢이며, 247가구, 494명[남자 279명, 여자 21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자연 마을로 백운동마을, 학운동마을, 서용성마을, 동용성마을, 용산마을이 있다. 여차리의 대부분 지역은 산지로, 보전 관리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 북쪽에서 동서 방향으로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가며, 남북 방향으로 여차로가 지난다.

김해시는 2022년 2월부터 여차리 용당나루터 2만 8000㎡ 면적에 1억 2000만 원을 들여 매화나무 588그루를 심고, 낙동강을 따라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수령 40~50년 된 매화나무 54그루, 배롱나무 45그루도 이곳으로 옮겨 심어 매화공원을 조성하였다. 여차리에서 생림면 도요리로 이어지는 3.72㎞ 구간에 테마 임도가 조성되었는데, 2023년 ‘도요새길’로 이름이 정해졌다. 도요새길은 낙동강을 따라 자전거와 마라톤 같은 레포츠를 즐기거나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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