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289
한자 貝塚
영어공식명칭 shell mound
이칭/별칭 조개무지,패총,조개무덤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선사/선사,고대/고대
집필자 지병목

[정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발견된 어패류 등 폐기물이 축적된 생활 유적.

[개설]

조개더미란 옛사람들이 먹고 버린 굴, 소라, 조개 등의 껍질이나 물고기류의 뼈 등이 오랜 시간 동안 한 곳에 쌓여 여러 층이나 더미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조개껍질을 비롯한 패각류(貝殼類)가 무덤처럼 무더기로 쌓여있는 모습 때문에 ‘조개무지’ 혹은 ‘패총(貝塚)이라고도 불린다. 그 더미 안에는 조개껍질 외에도 물고기뼈나 동물뼈, 각종 씨앗 등 다양한 음식물 찌꺼기는 물론, 인간들이 생활하다가 버린 토기편 등 생활용품들도 함께 발견되고 있다. 전체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한 덩어리를 이루어 단일 층으로 수 미터 높이로 쌓인 예도 있다. 일정 장소에 조개껍질 등이 쌓인 후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난 다음 다시 사용하게 되면 각 단계가 각각의 층을 만들게 되어 구별된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어 여러 층을 이룬 조개더미도 있다. 여러 층을 이룬 조개더미는 각 층이 서로 다른 시기에 쌓인 퇴적의 선후 차이를 반영하므로 중요한 정보들을 제공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 칼슘이 풍부한 조개껍질이 토양을 알칼리성으로 만들어준 덕분에 조개더미 속에서는 나무나 뼈 등 유기물로 만들어진 유물들이 썩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산성이 강한 토양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 동물뼈, 인골, 목제유물 등을 포함한 다양한 물질 자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조개더미가 지닌 특징이다. 신석기 시대부터 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조석간만(朝夕干滿)의 차이가 커서 조개류가 많이 서식할 수 있는 갯벌이 발달한 해안가나 섬 주변에서 발견되는 예가 많다.

[조개더미 유적의 생성과 특징]

선사 시대 사람들에게 물고기잡이나 조개류 채취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해산물은 상당히 중요한 먹거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먼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며, 강가나 해안가에서 남녀노소가 좀 더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조개류나 해산물이 훨씬 더 중요한 식량 자원이었을 것이다. 조개더미 속에는 이런 음식물 찌꺼기뿐 아니라, 사용하고 버린 생활 폐기물들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을 분석하면 당시의 식생활 재료, 방식 등 다양한 생활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석간만의 차이가 적은 동해안 지역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고, 조석간만의 차이가 커 갯벌이 발달한 서해안, 남해안 지역에서 많은 조개더미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 시대에 해당하는 조개더미 유적이 가장 많이 보고되고 있다. 서해안에서는 경기도 옹진군 소연평도, 안산시 오이도, 충청남도 태안군 고남리 등에서 수백 곳의 조개더미가 알려졌다. 남해안에서는 부산시 동삼동·범방·다대포, 사천시 늑도, 통영시 연대도·욕지도 등에서 조개더미가 확인되어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한편 청동기시대 들어 조개더미의 예가 상대적으로 적어지다가 서력기원(西曆紀元)을 전후한 시기 이후 다시 그 빈도가 높아지는 점도 흥미롭다.

[김해 지역의 주요 조개더미 유적과 특징]

김해 지역에서 조개더미 유적이 발견된 것은 상당히 오래전 일이다. 바닷가와 가깝다는 지형적 특징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이런 유적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김해 회현리 조개더미[현재 김해봉황동유적], 수가리 조개더미 등이 일찍부터 주목받아 왔다. 특히 회현리[현재 회현동] 조개더미는 1900년대 초,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고고학적 발굴이 이루어진 유적으로, 이후 우리나라 조개더미 유적 중 가장 상징적인 존재의 하나로 언급되고 있다. 특히 1933년 ‘김해회현리패총’라는 이름으로 사적에 지정될 만큼 그 중요성을 인정받은 유적이었다. 동-서 길이 약 120m, 남쪽 폭 약 30m, 높이 약 6m에 정도의 범위에서 조개더미가 확인된 대규모 유적으로, 유적의 규모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유적은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수를 차지하는 조개류[굴, 꼬막, 소라, 홍합, 다슬기 등]를 비롯하여 생활 도구류[토기편, 돌도끼, 숫돌], 뼈로 만든 유물[화살촉, 칼자루, 장신구 등], 식용으로 먹었을 동물의 뼈[상어, 고래, 오리, 소, 말 등의 뼈]와 탄화된 곡물 등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또한 중국 왕망이 세운 ‘신(新)’나라 때 만들어졌다는 ‘화천(貨泉)’[기원전 14년]이 함께 발견되어 당시 대외교류와 유적의 연대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이런 출토 유물들을 통해 이 조개더미가 기원 전후한 시기부터 기원 4세기 전후한 시기까지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조개더미의 동쪽 정상부 주변에서 조개더미가 퇴적되기 이전에 만들어진 고인돌[支石墓], 돌널무덤[石棺墓), 독널무덤[甕棺墓] 및 집자리[住居址] 등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즉 이전 시기의 문화층 위에 대규모 조개더미가 주변에 퇴적되면서 또 다른 문화층이 형성된 복합 문화층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적이다.

김해시 부원동에서도 대규모 조개더미가 분포하였으나 김해시의 도시 확장 사업으로 1980년대 동아대 박물관 조사를 거친 후 사라진 상태이다. 당시 이곳에서는 조개더미를 만든 주인공들이 사용하였던 토기, 철기, 골각기, 탄화 곡물들이 발견되었다. 조개더미층의 하부에서는 무덤 유적[돌널무덤, 돌덧널무덤, 움무덤]과 집자리도 함께 보고되었다. 회현동 조개더미와 마찬가지로 이 부원동에서도 조개더미를 남긴 주민에 앞서서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였음을 보여주는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복합 유적임을 알 수 있다. 이외에 대성동 고분군 내에서도 길이 20m, 폭 20m, 높이 1m 정도의 조개더미가 확인되었다. 지금은 확인하기 어렵지만 삼계동에서 조개더미가 보고된 바 있고, 칠산동에서도 조개더미가 몇 군데서 확인되었다. 진영읍 본산리, 장유동 일대의 유하리·신문리 용산마을·내덕리, 주촌면 천곡리·양동리·농소리 등에서도 조개더미 유적이 확인되었다. 특히 유하리 조개더미는 인근에 있는 양동산성양동리 고분군의 축조자들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농소리 조개더미는 1964년 조사되어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 토기가 발견되어 주목 받았다. 또한 한림면 시산리 조개더미에서는 무늬가 없는 토기 표면에 점토대를 두른 이른 시기의 신석기 시대 토기가 발견되어 김해 지역의 신석기 시대 자료를 더욱 풍부하고 중요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행정 구역 개편으로 부산광역시에 포함된 수가리 조개더미[현재 범방동 가동 조개더미]는 조사 당시 김해 지역이었기 때문에 김해 수가리 조개더미로 학계에 더 잘 알려져 있다. 3기의 ‘수가리 문화층’으로 분류된 신석기 시대 문화층 중 맨 아래 1기층과 가장 위층인 3기층이 만들어질 당시의 해수면 차이가 약 7m에 이른다고 한다. 이처럼 조개더미의 퇴적 양상과 그 안에 포함된 자료를 분석함으로써 당시의 식생활 뿐만 아니라 해수면 상승이나 해수의 온도 등 자연환경의 변화 양상도 알 수 있다.

조개더미 관련 유적은 그 형성 자체가 폐기물을 모아 놓은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자칫 소홀히 다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수많은 중요한 정보가 담긴 매우 귀중한 유적이다. 충분한 조사와 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뒷받침이 필요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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