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3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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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府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신은제 |
[정의]
고려 초기에서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개설]
금관소경이었던 김해는 고려가 건국된 이후 김해부가 되었다. 김해부는 이후 시기에 따라 현으로 강등되거나 도호부라는 명칭을 가지기도 하였지만 기본적으로 1896년 13도제가 실시될 때까지 김해의 명칭이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 태조는 후삼국을 통일한 후 신라 때 설치한 5소경을 주(州)나 부(府)로 강등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해소경이 김해부가 되었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 권150, 지리지, 경상도 진주목 김해도호부 기사에서 김해부의 연혁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고려 태조 23년(940)에 김해부(金海府)로 고쳤다. 뒤에 낮추어서 임해현(臨海縣)으로 하였다가, 올려서 군(郡)으로 하였고, 성종(成宗) 14년(995) 을미에 금주안동도호부(金州安東都護府)로 고쳤다. 현종(顯宗) 3년(1012)에 금주방어사(金州防禦使)로 낮추었다. 원종(元宗) 11년(1270) --중략-- 삼별초(三別抄)를 막은 공(功)이 있어 금녕도호부(金寧都護府)로 승격하였다. 충렬왕(忠烈王) 34년(1308) 금주목(金州牧)으로 올렸다가, 충선왕(忠宣王) 2년(1321) --중략-- 다시 김해부로 하였다. 본조[조선]에서 그대로 따랐다가, 태종 13년(1413) 예(例)에 따라 도호부(都護府)로 고쳤다.”
[내용]
고려 건국 후 940년(태조 23)에 전국의 지방 통치 체계를 새롭게 재편하는 대대적인 지방제도 개편이 이루어졌다. 후삼국의 혼란을 거치면서 지방에 할거한 호족들을 통제하기 위해 태조는 신라의 지방 제도를 개편한 것이었다. 신라 후기 김해 지역에도 소충자·소율희 같은 호족들이 등장하였으나 견훤에 의해 제압당하였고, 김해 지역은 견훤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이 되었다. 고려 건국 후, 김해 지역은 김해부로 재편되었으나 중앙에서 파견된 양전사가 사망하는 등 김해의 호족 세력은 쉽게 고려로 편입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김해는 임해현(臨海縣)으로 강등되었다가 995년(성종 14) 즈음 다시 금주안동도호부(金州安東都護府)로 승격하였다. 그런데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임해현에서 김해부로 승격한 시기는 994년(성종 13)이다. 성종 말년 도호부로 승격한 김해는 1012년(현종 3)에 방어사로 강등되었다가 1270년(원종 11) 삼별초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워 금녕도호부(金寧都護府)로 승격되었다. 조선이 건국한 이후에도 김해는 도호부의 읍격을 가지고 있다가 1896년 지방 제도 개편 과정에서 김해군이 되었다.
[변천]
고려 초 940년(태조 23) 김해부가 되었다가 이후 임해현으로 강등되었다. 995년(성종 14) 금주안동도호부(金州安東都護府)가 되었다가 1012년(현종 3) 김해방어사가 되었다. 1270년(원종 11) 금녕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1298년(충렬왕 24) 계수관급인 김해목이 되었으나 2년 뒤 다시 김해부가 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도 김해부였다가 1413년(태종 13) 김해도호부가 되었다. 1895년 전국에 23부를 둘 때 진주부 김해군이 되었으며 이듬해 1896년 전국을 13도로 나누면서 김해군이 되었다.
[의의와 평가]
고려 건국 후 김해부가 되었고 이 때 제정된 읍격은 개항기까지 김해 읍격의 근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