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334
한자 金州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배상현

[정의]

고려 시대 경상도 김해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개설]

금주(金州)는 고려 시대 김해 지역의 읍격(邑格)을 나타내는 대표 지명이었다. 김해 지역은 고대 가락국(駕洛國)[또는 금관국(金官國)]이 위치하였던 곳으로, 신라에 병합된 후에는 금관소경(金官小京), 김해소경(金海小京) 등으로 불리었다. 고려에 의한 후삼국 통일 이후 읍격의 오르내림이 없지는 않았으나 고려의 치소성(治所城)이 남아 있었으며, 의안군(義安郡)·함안군(咸安郡) 등 2개의 군과 칠원현(漆原縣)·합포현(合浦縣)·웅신현(熊神縣) 등 3개 현을 속읍(屬邑)으로 두었다.

[관련 기록]

『고려사』 권57, 지리3 경상도에 “금주(金州)는 본래 가락국(駕洛國)이다. …[중략]… 태조(太祖) 23년 주(州)·부(府)·군(郡)·현(縣)의 이름을 고치면서 김해부(金海府)가 되었고, 뒤에 임해현(臨海縣)으로 강등하였으며 또 승격시켜 군(郡)이 되었다. 성종(成宗) 14년에 금주(金州)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로 고쳤다. 현종(顯宗) 3년에 다시 금주로 바꾸었다. 원종(元宗) 11년에 방어사(防禦使) 김훤(金晅)이 밀성(密城)의 반란을 진압하고, 또 삼별초(三別抄)를 막는 데 공이 있었으므로, 승격시켜 김녕도호부(金寧都護府)가 되었다. 충렬왕(忠烈王) 19년에 현(縣)으로 강등되었다가 동왕 34년에 승격되어 금주목(金州牧)이 되었다. 충선왕(忠宣王) 2년 여러 목(牧)을 도태(淘汰)시키면서, 다시 김해부(金海府)가 되었다. …[중략]… 속군(屬郡)이 2개, 속현(屬縣)이 3개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고려 시대 지방은 주(州)·부(府)·군(郡)·현(縣) 등으로 읍격(邑格)이 구분되었다. 995년(성종 14) 10도(道)로 전국을 편성할 때 금주안동도호부(金州安東都護府)가 되어 경주(慶州)와 함께 영동도(嶺東道)를 관장하였다. 그리고 1018년(현종 9) 주속현(主屬縣) 체계에서 의안군(義安郡)[현재의 창원시 의창구·성산구]·함안군(咸安郡) 등 2개 군을 속군(屬郡)으로, 칠원현(漆原縣)[현재의 함안군 칠원]·합포현(合浦縣)[현재의 창원시 마산합포구]·웅신현(熊神縣)[현재의 창원시 진해구] 등 3개의 현을 속현(屬縣)으로 삼았다.

[변천]

940년(태조 23) 김해부(金海府), 995년(성종 14) 금주안동도호부(金州安東都護府), 1012년(현종 3) 금주(金州), 1270년(원종 11) 김녕도호부(金寧都護府), 1293년(충렬왕 19) 현(縣)으로 강등, 1308년(충렬왕 34) 금주목(金州牧), 1310년(충선왕 2) 김해부(金海府)가 되는 등 읍격의 오르내림이 있었다.

[의의와 평가]

고려 시대 대읍(大邑)이자 주현(主縣)이었던 김해 지역의 읍격을 나타내는 대표 지명으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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