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등처진변만호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331
한자 金州等處鎭邊萬戶府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관부(전통 시대)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신은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창설 시기/일시 1281년 10월연표보기 - 금주등처진변만호부 설치
폐지 시기/일시 1356년연표보기 - 금주등처진변만호부 폐지

[정의]

여원연합군의 일본 원정이 실패한 이후 1281년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설치된 군사 기구.

[개설]

1281년 2차 일본 원정이 태풍으로 실패하자 원 조정에서는 쿠빌라이의 칙명으로 금주에 진변만호부를 설치하였다. 공민왕이 반원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1356년(공민왕 5) 일시 혁파되었다가, 1358년 고려식 만호부가 전국 각지에 설치되었고 고려 말의 수군만호부로 이어졌다.

[설립 경위 및 목적]

2차 일본 원정이 실패한 이후 행여 있을지 모를 일본의 반격에 대비하기 위해, 그리고 금주 등지가 일찍부터 일본과 가까웠으므로 이들 지역에 대한 치안 확보를 목적으로 원 조정은 금주 등 지역에 금주등처진변만호부를 설치하였다. 금주에 설치했던 금주등처진변만호부는 1293년(충렬왕 19) 합포등처진변만호부로 명칭이 바뀌었다. 만호부의 본영이 금주에서 합포로 이동하였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금주진변만호부를 시작으로 원은 전라도진변만호부를 설치하였다. 진변만호부라는 이름으로는 경상도 일대의 금주등처진변만호부와 전라도진변만호부 2곳이지만 서경등처관수수만호부(西京等處管水手萬戶府), 왕경등처순군만호부, 탐라군민만호부와 함께 고려는 5만호부 체제로 운영되었다.

[조직 및 담당 직무]

진변만호부에는 다루가치[達魯花赤], 도만호(都萬戶), 상만호(上萬戶), 만호, 부만호(副萬戶), 천호(千戶), 총관(摠管), 백호(百戶), 제공(提空), 녹사(錄事) 등의 관원이 있었다. 1281년 처음 설치되었을 때 진변만호부의 관리는 몽골 출신으로 고려에 온 인물들인 인후[만호]나 장순룡[총관] 등이 임명되었다가 1291년 이후부터는 고려인들이 관원에 임명되기 시작하였다. 금주진변만호부는 일본 침략에 대비하여 변방 강화 등의 군사적 임무를 가지면서 또한 곡물과 재물을 침탈하거나 무역에 투자하는 역할도 하였다. 만호부의 이러한 행위는 원 제국의 만호부들이 농경과 무역 등의 경제 활동을 한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관련 기록]

“10월 기해 원(元)에서 칙서(勅書)를 내려서 고려의 금주(金州) 등 지역에 진변만호부(鎭邊萬戶府)를 설치하였다. 인후(印侯)를 소용대장군 진변만호(佋勇大將軍 鎭邊萬戶)로 임명하고 호부(虎符)와 인(印)을 하사하였고, 장순룡(張舜龍)을 선무장군 진변관군총관(宣武將軍 鎭邊管軍摠管)으로 임명하였다.”[『고려사』 권29 충렬왕 7년 10월]

[변천]

금주등처진변만호부는 1293년 본영이 합포로 이전되어 합포등처진변만호부로 불리었다. 진변만호부는 1356년(공민왕 5) 1차 폐지된 이후 1358년 다시 고려식으로 설치되어 만호가 외관을 겸직하는 사례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진변만호부는 일본 원정이 실패한 뒤 일본의 반격을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설치되었으나, 이후 고려의 내정을 간섭하는 기구로 존속하다 공민왕대 개혁을 거쳐 고려화된 군사 기구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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