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도호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370
한자 金海都護府
영어공식명칭 Gimhae Dohobu
이칭/별칭 김해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관부(전통 시대)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백지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창설 시기/일시 1413년연표보기 - 김해도호부 설치
폐지 시기/일시 1895년연표보기 - 김해도호부 폐지
소재지 김해도호부 - 경상남도 김해시

[정의]

조선 시대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개설]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는 조선 시대 김해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이다. 1413년(태종 13)에 설치되어 1895년(고종 32) 23부제가 실시되어 진주부 김해군으로 개편될 때까지 도호부로 존속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조선의 지방 제도는 건국 초기까지 고려 시대의 것을 답습하는 수준이었다. 김해 지역 역시 고려 시대와 마찬가지로 경상도(慶尙道)에 소속된 김해부(金海府)로 지부사(知府事)가 파견되었다. 이후 태종의 즉위와 함께 새 왕조의 이념에 따라 지방 통치 체제 역시 정비가 진행되었다. 1413년(태종 13) 조선 정부는 고을의 읍명(邑名) 및 읍격 개편 논의를 진행하였고, 각도에서 부(府)라고 부르던 곳을 도호부(都護府)로 고쳤다. 이에 김해부김해도호부가 되었으며, 종3품의 도호부사(都護府使)가 파견되었다.

[조직 및 담당 직무]

조선 시대에 편찬된 읍지류 서적의 관직(官職) 조(條)를 보면 각 지역에 파견된 관료를 기록하고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김해도호부에는 도호부사(都護府使) 1인을 비롯하여 좌수(座首) 1인, 별감(別監) 3인, 군관 150인, 토포군관(討捕軍官) 190인, 인리(人吏) 58인, 지인(知印) 16인, 사령(使令) 20인, 군뢰(軍牢) 20명, 관노 20구, 관비 17구가 있었다. 도호부사는 김해 지역의 행정권, 사법권, 군사권을 가지고 김해 지역을 통솔하였다. 좌수와 별감은 김해 유향소(留鄕所)의 임원으로서 김해 지역의 유력 가문에서 선발되었으며, 도호부사의 자문 역할 등을 담당하였다.

[관련 기록]

김해를 도호부로 수록한 지리지 중 가장 이른 것은 1425년(세종 7) 편찬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이다. 김해도호부의 간단한 내력과 함께 속현과 부곡, 역, 명산, 사방경계, 호구, 토성(土姓) 등을 기록하였다. 이후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비롯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1832] 등 조선시대에 편찬된 읍지류에 김해도호부가 수록되어 있다.

[변천]

김해 지역은 1413년 도호부가 설치된 이후, 1895년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질 때까지 도호부로서의 읍격을 유지하였다. 1895년 시행된 23부제에 따라 김해군이 되어 진주부의 관할 하에 들어갔고, 이듬해인 1896년 13도제를 실시하면서 경상남도 김해군이 되었다.

[의의와 평가]

김해는 조선 왕조 개창 이후 지방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도호부가 설치되었다. 이후 조선 시대 전 기간 읍격의 변화 없이 도호부로 존속하였다. 도호부는 지방 행정 구역 중 상위 행정 구역으로, 이를 통해 조선 시대 김해 지역의 인구 및 규모 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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