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무양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379
한자 光武量田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하지영

[정의]

개항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시행된 근대적 토지 조사 사업.

[개설]

양전(量田)은 토지 제도와 지세 제도를 수립하기 위해 실시하는 토지 조사 사업으로, 광무양전은 1898~1904년에 걸쳐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조선 시대 실시된 마지막 양전이며, 당시 고종의 연호를 따라 ‘광무양전(光武量田)’이라 불린다.

[광무양전의 배경]

19세기 조선 사회는 군현 단위로 세금을 징수하는 총액제적 조세 체계가 붕괴되면서 백성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다. 부등산 등기 제도와 같은 토지에 대한 국가의 보호 장치가 결여된 상태에서 사적인 매매 문기를 매개로 한 토지 거래가 빈번하여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었다. 특히 1876년 개항 이후 일본인 등 외국인이 조선으로 들어와 불법적인 토지 매매를 자행하자, 이로 인한 정치·사회적 혼란은 한층 고조되었다. 대한제국 정부는 외국인의 불법적 토지 매매와 소유를 금지하는 한편, 근대적 토지 소유권을 확립할 목적으로 전국적인 양전 사업인 광무양전을 실시하게 된다. 광무양전은 1898년 탁지부 산하에 설치된 양지아문(量地衙門)에서 주관하다가, 1901년부터는 지계(地契)를 발급을 목적으로 설치된 지계아문(地契衙門)이 주관하였다.

[김해 지역의 광무양전]

경상남도 지역 양전 사업은 군마다 실시 기관이 달랐다. 김해군에서는 지계아문이 양전 사업을 실시하고 『양안(量案)』을 작성하였는데,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김해군 양전 사업의 결과를 보면, 원장부의 결부가 10,254결인데 반해 새 양안에서는 8,453결로 조사되었다. 수세결은 6,128결로, 1,801결 감소되었다. 이때 김해군 15개 면에 소재한 각 궁토(宮土)와 둔토(屯土), 역토(驛土) 등 공토(公土)를 조사하는 광무사검(光武査檢)도 실시되었다. 1904년 작성된 『공토성책(公土成冊)』에 따르면, 전답의 총결수는 1,453결 95부 3속이었는데, 이 가운데 밭은 5,532일(日) 1시(時) 7각경(刻耕)이고, 논은 12,655두 7승락이었다. 이렇게 실시된 광무양전은 1906년 통감부가 「토지가옥증명규칙」을 제정하면서 무력화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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