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 의병 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407
한자 開港期 義兵 運動
이칭/별칭 한말 의병 운동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하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896년 4월 11일연표보기 - 노응규 부대 김해평야에서 일본군과 전투
성격 의병 운동
관련 인물/단체 노응규

[정의]

개항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일본군에 맞선 의병들의 저항 운동.

[역사적 배경]

청일전쟁에 이어 러일전쟁과 을사늑약의 체결로 이어지는 일제의 국권 침탈이 가속화하자, 이에 반대하는 의병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경상남도에서는 지리산 등 서부 지역 산악 지대를 배경으로 유격전 형태의 의병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노응규(盧應奎)[1861~1907]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함양 출신 의병장 노응규는 영남 유림의 권위로 알려진 허전(許傳)[1797~1886]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1896년 1월 승려 서재기(徐再起) 등과 안의에서 거의, 진주성을 공격하여 장악하는 데 성공하였다.

[경과]

진주 일대를 장악한 노응규 부대는 1896년 3월 28일 일제의 침략 교두보인 부산항을 공격하고자 김해 일대로 병력을 집중시켰다. 이때 수천 명의 김해 민중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였지만, 일본군 측은 정보를 수집하며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4월 11일 노응규 부대는 선제공격한 일본군과 지금의 김해평야 일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으나, 일본군에 패배하면서 부산항 공격은 좌절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노응규 부대에 합세하였던 정한용(鄭漢鎔)이 배반하면서 진주성까지 일제에 빼앗기고 말았다.

[의의와 평가]

노응규 부대는 개항기 경상남도 서부 지역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의병으로, 김해평야에서 일본군과 벌인 치열한 전투는 김해 지역의 반일 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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