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6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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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傳 |
영어공식명칭 | Heo Jeon |
이칭/별칭 | 이로(伊老),성재(性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상현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김해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허전(許傳)[1797~1886]의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자는 이로(伊老)이고, 호는 성재(性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허병(許秉)이고, 할아버지는 허윤(許玧)이며, 아버지는 허형(許珩)이다.
[활동 사항]
허전은 1797년(정조 21)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동교동에서 태어났다. 1828년(순조 28) 상시(庠試)에 합격하고, 1835년(헌종 1) 문과에 급제하였다. 1864년(고종 1) 2월 우부승지가 되었고, 7월에 김해부사로 부임하여 유학의 진흥과 정사에 힘을 쏟았다. 부임한 해에 향음주례(鄕飮酒禮)를 시행하였으며, 김해향교의 유생들에게 회유문을 내려 고례(古禮)를 회복하여 풍교(風敎)에 보탬이 될 것을 선언하였다. 소식을 듣고 인근의 많은 유생이 모여들자, 명륜당에 모아 학문을 가르쳤다. 또한 1865년(고종 2)에는 자신의 사처(私處)였던 공여당(公餘堂)을 개방하여 유생을 맞아들였는데, 수가 백여 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이 무렵 노필연(盧佖淵)과 노필연의 아들인 노상익(盧相益)·노상직(盧相稷) 등 허전 문하의 대표적인 제자들이 입문하였다.
1866년(고종 3)에는 신산서원(新山書院)의 장이 되어 조식(曺植)[1501~1572]이 수양하였던 산해정을 찾아 유생들과 강학하였다. 목민관으로서 아전이 민생을 해치지 않도록 경계하였으며, 사서인(士庶人)이 옳지 못한 일에 빠지지 않도록 회유하였다. 1866년(고종 3) 6월에 치적을 인정받아 새서(璽書)와 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1866년 7월 임기를 마치자, 수백의 백성과 유생이 전송하였으며, 제자들이 배행하여 서울로 올라가기도 하였다. 이후 이조판서, 홍문관제학, 판돈녕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1886년(고종 23) 9월 23일 불권당(不倦堂)에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허전의 저서로는 『철명편(哲命篇)』, 『종요록(宗堯錄)』, 『사의(士儀)』, 『성재집(性齋集)』이 있다.
[묘소]
『성재집』에 따르면, 허전은 과천현(果川縣) 국일리(菊逸里)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