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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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生林面 鳳林里 萬歲運動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전성현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19년 4월 3일 - 생림면 봉림리 만세운동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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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 장소 | 생림면 봉림리 만세운동 -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봉림리 |
성격 | 독립운동 |
[정의]
1919년 4월 3일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봉림리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역사적 배경]
김해군 생림면[현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른 면 통폐합 때 안양리, 사촌리, 나전리, 봉림리, 금곡리, 생철리, 도요리, 마사리, 생림리 등 9개 리가 되었다. 여기에는 하북면 용덕리[현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용덕리]와 밀양군 하남면 삼랑리[현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 일부 지역까지 편입되었다. 그 결과 생림면은 김해면과 이북면, 그리고 밀양군 삼랑진면 사이에 자리하게 되었는데, 삼랑진과 김해군의 일본인 대농장인 낙동강농장과 이북농장의 영향력 아래 열악한 처지에 있었다.
[경과]
1919년 3월 1일 서울과 평양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된 3·1운동이 김해 지역에서는 3월 말에서 4월 초에 집중적으로 전개되었다. 김해 지역 첫 시위인 김해 읍내 만세 시위가 3월 29일 시작되어 30일과 4월 2일 연속해서 전개되는 가운데, 또 다른 김해군의 중심지인 하계면[현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에서도 3월 31일부터 시위가 진행되며 만세 시위의 열기가 전군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4월 3일은 하계, 장유, 생림 등 김해면을 둘러싼 서쪽과 남쪽, 그리고 북쪽에서 모두 만세 시위의 기운이 확대되었다. 그 가운데, 김해군의 북쪽 지역인 생림면 봉림리에서는 약 100~200명의 군중에 의해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별다른 불상사 없이 바로 해산된 것으로 보인다. 4일에도 약 200명 정도의 군중에 의해 봉림리에서 만세 시위가 전개된 것이 일본 측 보고에 확인되는데, 3일의 시위와 동일한 사건에 대한 보고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생림면 봉림리 만세운동은 김해 지역 3·1운동이 전군으로 확산하는 와중에 일어난 시위의 하나이다. 비록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3·1운동이 지방 사회 곳곳에 퍼져 나간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