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민주항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417
한자 六月 民主抗爭
영어공식명칭 June Opposition in 1987
이칭/별칭 6월항쟁,6월민주화운동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동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단 시기/일시 1987년 1월 14일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발생
발생|시작 시기/일시 1987년 6월 10일연표보기 - 6월 민주항쟁 발발
종결 시기/일시 1987년 6월 29일연표보기 - 6월 민주항쟁 종결
성격 민주 항쟁
관련 인물/단체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

[정의]

1987년 6월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

[개설]

6월 민주항쟁은 1987년 6월 10일 박종철고문살인은폐조작규탄및민주헌법쟁취범국민대회로부터 6월 29일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의 6·29 민주화 선언 발표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에서 총 인원 400~500만 명이 참여하여 4·13 호헌조치 철폐, 민주 헌법 쟁취 등을 요구한 반독재 민주화를 위한 운동으로, 6월 항쟁, 6월 민주화운동 등으로도 불린다.

[역사적 배경]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이 국민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묵살하는 호헌조치를 발표하자, 여기에 맞서 교수·출판인·변호사·전직 및 현직 국회의원·문화 운동 단체 등이 4·13조치에 반대하는 시국 성명을 연일 발표하였으며, 종교인들의 단식기도와 재야 인사·노동자·농민·학생들의 반대 시위, 단식 농성이 줄을 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5월 18일 명동성당에서 거행된 광주항쟁추모미사에서 박종철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는 충격적인 성명이 발표되었다. 이렇게 되자 그동안 억눌렸던 반인권적인 정권에 대한 전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였으며, 5월 27일 결성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의 투쟁 전선에는 야당까지 합세하였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고, 여당인 민주정의당은 6월 10일 전당대회를 열어 노태우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였다. 이에 6월 10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박종철 고문 살인 은폐 조작 규탄 및 민주 헌법 쟁취 범국민대회의 개최를 선포하였다.

[경과]

6월 민주항쟁 기간 김해에서 시위가 벌어진 것은 6월 18일과 26일 두 차례이다. 항쟁을 주도하였던 인제대학교 학생들이 백병원이 있는 개금캠퍼스를 거점으로 삼아 부산 지역 항쟁에 집중하였기 때문이다. 김해 지역에서는 인제대학 김해캠퍼스 재학생을 중심으로 6월 18일에 본격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12시 노천강당에서 비상총회를 개최한 뒤 7백여 명의 학생들이 스크럼을 짜고 김해시의 주요 간선 도로에서 가두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6월 26일 6·26 국민평화대행진의 날에는 마산과 진주를 비롯하여 진해, 김해, 거창까지 시위가 확산되었다. 특히 김해에서는 이광희 등 민주 인사와 인제대학 학생 60여 명이 동광국민학교[현 김해동광초등학교] 강당에서 개최하려던 민주헌법쟁취를위한토론회가 경찰의 방해와 봉쇄로 무산되자 가두로 나와 항의 시위를 벌였고, 이 중 10여 명이 강제 연행되었다. 그러나 남은 사람들이 경찰서로 몰려가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자 모두 석방되었다.

김해의 6월 민주항쟁인제대학교의 김해캠퍼스와 개금캠퍼스를 포괄하여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 부산지역총학생회협의회 등과 연계하면서 전개되었으며, 7, 8월의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다.

[결과]

6월 민주항쟁의 결과 6월 29일 민정당 대선 후보 노태우는 민주화를 위한 요구 사항을 대폭 수용하고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는 실질적 항복 선언을 하게 된다.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이 이루어졌고, 1987년 12월 16일 직선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하지만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대다수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김영삼과 김대중이 단일화에 실패하고 각각 출마하면서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2월 대통령 선거는 지역주의가 투표 성향을 압도적으로 지배하였다. 지역주의는 우리 사회 정치적 민주주의의 질곡을 가져왔다. 그러나 연 인원 400~500만 명 이상의 국민이 참여한 6월 민주항쟁은 정치와 사회 각 분야에서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고. 시민 사회 운동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의의와 평가]

6월 민주항쟁은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26년간 지속된 군부 독재를 종식시키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후 비록 민주 진영의 양대 축인 김대중과 김영삼의 단일화 실패로 인해 군부 출신의 민정당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국민의 기본권이 대폭 신장되고, 노동 운동을 비롯한 시민 사회 운동이 비약적으로 활성화되어 한국 사회가 한 단계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김해의 경우 지역 차원에서 6월 민주항쟁을 주도적으로 전개하지는 못하였지만, 시민 사회 운동이 급속히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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