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462
한자 錦洲先生文集
영어공식명칭 Geumjuseonsaeng-munjip
이칭/별칭 『금주집』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구진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41년연표보기 - 『금주선생문집』 간행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소장처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신촌동 134]
성격 시문집
저자 허채
권책 15권 8책
행자 10행 18자
규격 20.6×18.0㎝[반곽]
어미 내향이엽화문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
권수제 금주선생문집(錦洲先生文集)

[정의]

1941년에 간행된 경상남도 김해 출신 개항기 유학자 허채의 시문집.

[저자]

허채(許埰)[1859~1935]의 자는 경무(景懋), 호는 금주(錦洲)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김해 회현리에서 사이당(四而堂) 허욱(許燠)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의성 김씨 김항진(金恒鎭)의 딸로,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제자 김우옹(金宇顒)의 후손이다. 허채의 선조는 임진왜란으로 훼손된 김해 신산서원의 중건을 주도한 죽암(竹庵) 허경윤(許景胤)이다. 6대조 삼외당(三畏堂) 허충(許衷)은 밀암(密庵) 이재(李栽)의 문인이었고, 아버지는 성재(性齋) 허전(許傳)의 문인이었다.

허채는 25세 무렵인 1883년에 할머니 광주 이씨의 명으로 아우 허대(許垈)와 함께 밀양 단장면 단장마을로 이주하였다. 1891년에 진사가 되었고, 이후 1898년 봄부터는 인근의 농주산 아래 주산서당(珠山書堂)을 열어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1935년 8월 향년 77세로 사망하였다. 허채는 어려서부터 만구(晩求) 이종기(李種杞)에게 배웠고, 허전의 문하에도 출입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금주선생문집(錦洲先生文集)』 판본에는 서문(序文), 발문(跋文), 간기(刊記) 등이 없어, 편찬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기 힘들다. 『금주집(錦洲集)』이라고도 불린다.

[형태/서지]

15권 8책의 목판본으로, 오침안 선장본으로 되어 있다. 판식은 사주쌍변(四周雙邊)으로, 계선(界線)이 있으며, 내향이엽화문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반곽의 크기는 20.6×18.0㎝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18자이다. 표제는 ‘금주집(錦洲集)’이며, 권수제는 ‘금주선생문집(錦洲先生文集)’으로 되어 있다. 주(註)는 쌍행(雙行)이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각 권을 문체별로 분류해 보면, 권1과 권2는 시(詩)이고, 권3에서 권10까지 8권 분량이 모두 편지이다. 권10과 권11은 잡저이고, 권12는 서(序)와 기(記)이며, 권13은 발(跋)·자사(字辭)·잠(箴)·명(銘)·상량문·축문·뇌사(誄辭)·제문 등 다양한 문체로 이루어졌다. 권14에는 묘지명·묘갈명이 수록되어 있고, 권15는 행장과 전(傳)으로 구성되었다.

[의의와 평가]

개항기에서 일제 강점기에 걸쳐 김해 지역 출신 유학 지식인의 삶과 교유 양상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총 15책 중 절반이 넘는 8권이 타인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루어져 있고, 인물 수는 200명이 넘는다. 시(詩)의 경우에도 차운시(次韻詩)·만시(輓詩) 등 교유의 과정에서 생성된 작품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실제로 허채는 200명을 상회하는 인물들과 교유하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당대 김해와 밀양을 중심으로 한 유학 지식인 집단의 인적 네트워크를 살펴볼 수 있고, 그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여러 담론들도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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