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468
한자 愚拙叜先生文集
영어공식명칭 Ujolsuseonseang-munjip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구진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10년연표보기 - 『우졸수선생문집』 간행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성격 문집
저자 안신현
편자 안효갑
권책 2권 1책
행자 10행 18자
규격 32.3×21.4㎝|20.7×16.1㎝[반곽]
어미 내향이엽화문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
권수제 우졸수선생문집(愚拙叜先生文集)
판심제 우졸수선생문집(愚拙叜先生文集)

[정의]

1910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 유학자 안신현의 문집.

[저자]

안신현(安信賢)[1642~1699]의 자는 경숙(敬叔)·성숙(誠叔), 호는 우졸수(愚拙叜)이며,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아버지 안척(安惕)과 어머니 김해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안신현은 어려서부터 뛰어나다는 소문이 자자해 백암(白巖) 조광계(曺光啓)가 사위로 삼았다. 처가가 창녕에 있어 창녕 지역 인물들과 많이 사귀었다. 미수 허목에게 배웠고, 간송 조임도 등을 따라 합강정(合江亭)에서 노닐기도 하였다. 김해 지역에서는 정옹 조구령, 사우당 조이추 등과 절친하였다. 매년 봄과 여름에 신산서원에 모여 남명 조식의 글을 강학하였다. 안신현이 사망한 이듬해 조구령안신현을 추모하는 사당을 세우자는 의견을 발의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1910년 6월 하순에 8세손 안효갑(安孝甲)의 발문이 작성된 것으로 보아 『우졸수선생문집(愚拙叜先生文集)』의 간행도 그즈음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안효갑은 발문에 선조 안신현은 허목의 문인으로 과거를 포기하고 은거하면서 적지 않은 문자를 남겼을 것으로 보이지만 돌아가신 이듬해에 화재가 나서 원고가 대부분 불에 타고 겨우 시와 명(銘) 몇 수와 상소문을 찾아 정리하였을 뿐이라고 기록하였다. 만시와 전기 자료 및 각종 서적에 있는 선조의 기록을 부록으로 해서 간행한다고 전하였다.

[형태/서지]

2권 1책의 목판본으로, 오침안 선장본으로 되어 있다. 판식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며, 내향이엽화문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크기는 32.3×21.4㎝, 반곽(半郭)의 크기는 20.7×16.1㎝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18자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우졸수선생문집(愚拙叜先生文集)’으로 되어 있다. 주(註)는 쌍행(雙行)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문집의 첫머리에는 김도화(金道和)의 서(序)가 있고, 잇따라 안신현의 가계도와 문집 목록이 있다. 권1에는 시(詩)·소(疏)·명(銘) 등이 수록되었고, 권2는 부록으로 유사(遺事)·행장 등과 안신현의 전기 자료 및 만장(輓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 중에는 회재 이언적의 성경(誠敬) 시에 차운한 것을 시작으로 여헌 장현광의 시에 차운한 것, 간송 조임도에게 보인 시, 미수 허목 만시 등 당대 유림의 거장들과의 관련성을 짐작할 수 있는 시들이 있고, 정옹 조구령에 차운 시, 신산서원에서 지은 시 등 지역 내에서 활동하며 지은 것도 적지 않다. 상소는 1666년[병오]에 유세철(柳世哲)과 함께 올린 것으로 1659년[기해]의 복제(服制)는 잘못된 것이기에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글이다. 즉 예송에서 남인의 설을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 명(銘)은 연명(硯銘)·필명(筆銘)·묵명(墨銘) 3편이다.

부록의 유사는 안신현의 증손자 안용택(安龍澤)이, 행록은 여주 이씨 이장운(李章雲)이, 행장은 여강 이씨 이매구(李邁久)가, 묘표는 양천 허씨 허전(許傳)이, 묘지명은 광주 노씨 노상직(盧相稷)이 각각 썼다. 만장은 손전(孫佺)·조구령·조이추·조이극이 쓴 것이 수록되어 있다. 발문은 노상익(盧相益)·허채(許埰)·조긍섭(曺兢燮)이 쓴 것과 8세손 안효갑이 1910년 6월에 쓴 것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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