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4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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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 月峰書院 古文書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덕정로77번길 11-16[관동동 55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구진성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9년 8월 6일 - 「김해 월봉서원 고문서」 6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69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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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2년 11월 29일 - 「김해 월봉서원 고문서」 83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추가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김해 월봉서원 고문서」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김해 월봉서원 고문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에서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지정 |
소장처 | 월봉서원 - 경상남도 김해시 덕정로77번길 11-16[관동동 555] |
발견|발굴처 | 월봉서원 - 경상남도 김해시 덕정로77번길 11-16[관동동 555] |
성격 | 고문서 |
관련 인물 | 전우|오진영|서진영|이보림|이우섭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관동동 월봉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개설]
월봉서원은 김해시 관동동 덕정마을에 위치하는데, 1917년에 건립되어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월봉서당’으로 불리다가 1984년 사당인 명휘사(明輝祠)를 세우면서 ‘월봉서원’으로 현판을 고쳐 달았다. 이 건물은 이보림이 강학하던 곳이다.
[제작 발급 경위]
「김해 월봉서원 고문서」가 생성된 것은 월봉서원에서 일생을 보낸 월헌(月軒) 이보림(李普林)[1903~1972]의 이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보림은 중종의 5남인 덕양군(德陽君) 이기(李岐)의 후손으로 할아버지 농은(農隱) 이경현(李慶鉉)과 아버지 봉정(鳳亭) 이승기(李承驥)의 기대로 어려서부터 한학 교육을 받았다. 1920년 봄에 아버지의 명으로 서해 계화도에 은거하던 기호학자 간재(艮齋) 전우(田愚)를 찾아가 문인이 되었다. 전우 문하의 여러 제자들과 수학하다가, 전우가 사망한 뒤로는 석농(石農) 오진영(吳震英)에게 배웠다. 이보림의 학문은 아들 이우섭(李雨燮)에게 이어졌다.
「김해 월봉서원 고문서」 대부분은 전우 및 그 문인 집단과 관련된 문서와 기타 집안 관련 문서이다. 2009년 8월 6일 「선원록」 관련 5건과 호구 단자 1건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69호로 지정되었고, 2012년 11월 29일에 83건을 추가하여 총 89건으로 변경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고, 2024년 5월 17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에서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되었다.
[구성/내용]
「김해 월봉서원 고문서」 중에는 조선 후기 기호학자였던 간재 전우 및 그 문인 집단과 관련된 문서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전우의 서찰과 연보, 오진영·서진영 등과 왕래한 서찰과 문집 초고, 강록·유기·유묵 등이 그것이다. 또한 19세기 전주 이씨 「선원록」 편찬과 관련하여 작성된 고문서가 5건 있다. 그중에 1834년 작성된 문서는 밀양도호부사가 밀양의 자손에게 세계 단자를 작성하여 올려 보내게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왕실에서 왕가의 자손들을 정확히 파악하여 신분을 보장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중요한 사례에 속한다. 이외에도 1822년 작성된 김해부 유하면 적항리에 거주하던 이동윤(李東潤)의 호구 단자를 통해 이 가계의 당시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김해 지역의 유학 지식인층과 전주 이씨 집안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고, 특히 영남 지역 노론 학맥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되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