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493
한자 金海 母恩庵 石造阿彌陀如來坐像
영어공식명칭 Stone Seated Amitabha Buddha of Moeunam Hermitage, Gimha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마사로 36-228[생철리 산181-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연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9년 8월 6일연표보기 - 김해 모은암 석조아미타여래좌상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75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김해 모은암 석조아미타여래좌상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5월 17일 - 김해 모은암 석조아미타여래좌상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에서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지정
현 소장처 모은암 -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마사로 36-228[생철리 산181-1]지도보기
성격 석조 불상
재질
크기(높이) 55.7㎝[전체 높이]|44㎝[불상 높이]|16㎝[머리 높이]|24.3㎝[불상 전후]|29.3㎝[불상 좌우]|8.3㎝[복장공 너비]|19㎝[복장공 깊이]
소유자 모은암
관리자 모은암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생철리 모은암에 있는 조선 후기 석조 아미타여래 좌상.

[개설]

모은암(母恩巖)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梵魚寺)의 말사이다. 모은암의 창건에는 수로왕허왕후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한다. 수로왕이 알에서 태어나 부모가 있지 않아 부모를 그리워하며 모은암을 지었다는 설과 대웅전 앞 긴 바위가 있는데 그 모습이 허왕후가 누워 있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모암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절 입구에 세워진 모은암 중창사적비의 중창기에 따르면 김수로왕의 장자 거등왕이 장유국사의 뜻을 받아 무척산[703m]에 모은암을 이룩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김해 모은암 석조아미타여래좌상임진왜란 이후인 조선 후기에 조성된 석조불로 불상 발원문과 복장물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삼존불상 중 본존상으로 양측 협시불은 양식적 차이를 보여 후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모은암 측 전언으로는 개금을 한 번 하였으며 목 주위가 파손되어 접합하여 수리하였다. 개금 당시 후령통과 경전 인쇄물이 약간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모두 사라진 상태이다.

김해 모은암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은 2009년 8월 6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75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는 삭제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에서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되었다.

[형태]

전체 높이는 55.7㎝, 불상 높이는 44㎝, 머리 높이는 16㎝, 불상 전후는 24.3㎝, 불상 좌우는 29.3㎝이다. 불상과 대좌를 별도로 조성하여 연결한 형태이다. 불상 아래에 좌우 25.5㎝, 전후 20.7㎝의 둥근 촉을 만들고 불석으로 대좌를 만들어 불상의 촉과 비슷한 크기의 홈을 파 불상을 끼우도록 하였다. 불상 밑바닥 중앙에는 복장공이 있으며 깊이는 19㎝, 너비는 8.3㎝이다. 복장공 내부는 1.5㎝ 폭의 조각도로 내면을 깎아 낸 흔적이 보인다. 복장물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불상은 허리를 약간 앞으로 구부정하게 숙이고 가부좌를 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신체와 비교하면 머리가 큰 편이나 무릎이 넓어 안정감이 있다. 머리에는 육계와 구분이 없으며 정수리에는 원통형 정상계주가 있고, 그 아래로 타원형의 계주가 있다. 방원형의 얼굴은 얼굴 폭이 넓고 눈매가 옆으로 길며 눈꼬리를 살짝 올렸다. 매부리형 코에 인중은 짧고 입술은 살짝 끝을 올려 살짝 미소를 짓고 있다. 목에는 선각의 삼도가 표현되어 있다. 양손은 손등을 위쪽으로 해서 양 무릎 위에 올려놓았으며 신체와 비교하면 손이 크게 조각되었다.

법의는 오른쪽에 편삼을 걸치고 대의를 입은 변형 편단우견이며, 가슴 앞으로 일직선의 승각기가 있는데, 사선으로 접었다. 양 무릎 사이로 흘러내리는 대의 자락은 부채꼴 모양으로 조선 후기 불상에서 보이는 정형화된 옷 주름을 표현하고 있으며, 세 개의 주름을 이루며 펼쳐져 있다.

[의의와 평가]

복장발원문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다. 하지만 방형의 얼굴에 매부리코, 왼쪽 어깨의 대의 표현 등으로 미루어 보아 17~18세기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활동한 색난파 불상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색난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에 활동한 조각승으로 1680년(숙종 6) 전라남도 화순 영봉사 목조지장보살좌상을 시작으로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사찰에 불상을 조성하였다. 색난의 계보는 색난~충옥, 초변, 일기~하천, 석준, 종혜로 이어지며 색난파의 불상 양식은 18세기 중반 이후 세부 표현이 생략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김해 모은암 석조 아미타여래좌상은 이런 색난파 조각승의 활동이 김해 지역에서도 있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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