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494
한자 金海 烽火山 磨崖如來坐像
영어공식명칭 Rock-carved Seated Buddha in Bonghwasan Mountain, Gimha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산3-17|산3-18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김연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9년 5월 7일연표보기 - 김해 봉화산 마애여래좌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김해 봉화산 마애여래좌상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5월 17일 - 김해 봉화산 마애여래좌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에서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지정
출토|발견지 김해 봉화산 마애여래좌상 발견지 -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산3-17|산3-18지도보기
성격 마애불
재질
크기(높이) 2.45m[불상 높이]|1.7m[무릎 높이]
소유자 김형만
관리자 김해시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에 있는 고려 시대 마애불.

[개설]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봉하마을 뒷산인 봉화산[140m]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이다. 산 중턱 바위틈에 끼어 옆으로 누운 채로 발견되었는데, 어떤 이유로 쓰러졌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일대에는 자은암(子恩庵)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폐사되었다. 김해 봉화산 마애여래좌상에는 당나라 황후의 꿈에 나타나 괴롭히는 청년을 신승의 힘으로 바위틈에 넣어 자암산 석불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김해 봉화산 마애여래좌상은 1979년 5월 7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는 삭제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에서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

[형태]

불상 높이는 2.45m, 무릎 높이는 1.7m로 불상 전체를 돋을새김하고, 옷 주름은 선각으로 표현하였다. 둥글고 작은 얼굴, 작은 입, 얼굴은 강조하되 옷 주름은 단순하고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암벽을 광배처럼 다듬은 후 불상을 돋을새김하여 조각하였으며 광배와 대좌 등은 표현하지 않았다. 작은 얼굴, 둥근 어깨, 넓고 높은 무릎으로 인해 안정감을 준다.

나발을 표현하지 않은 민머리에 육계는 살짝 솟아 있다. 이마는 다른 머리카락 표현 없이 밋밋하며 얼굴은 작고 둥글다. 눈은 옆으로 가늘고 길게 뜨고 있고 작으며 코끝이 둥글며 입술이 작다. 입 주변이 마모되어 정확한 표정은 알 수 없으나 전체적으로 근엄한 인상을 준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며 목은 짧고 삼도는 표현되지 않았다.

둥근 어깨 양쪽을 덮은 대의는 통견으로 목 아래부터 배꼽까지 느슨하게 U자형을 그리며 내려온다. 가부좌한 다리에는 옷 주름을 몇 개의 선으로만 표현하였고, 대좌나 발바닥 등의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오른손은 가슴 앞으로 올려 손바닥을 밖으로 보이게 하고, 왼손은 손끝을 바닥으로 향하게 들고 있는 시무외인(施無畏印), 여원인(與願印)을 짓고 있다.

[의의와 평가]

시무외인, 여원인의 수인이나 안정적인 무릎이 넓고 높으며 안정적인 자세 등은 통일신라 불상의 양식을 계승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둥글고 작은 얼굴에 작은 입술 등의 얼굴 표현은 고려 시대 불상인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977년 중수, 보물]이나 이천 장암리 마애보살반가상[981년, 보물], 고령 개포동 석조관음보살좌상[985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등과 유사하며 가슴 아래로 느슨한 U자형 옷 주름이나 단순하고 형식화된 옷 주름 등은 거창 가섭암지 마애여래삼존입상[1111년, 보물]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따라서 김해 봉화산 마애여래좌상은 통일신라 시대 양식을 계승한 고려 시대 마애불로 볼 수 있다.

김해 지역은 통일신라 말 구산선문(九山禪門) 선중의 중심지이자 고려 시대에는 9개 주 읍 중 하나로 불교가 번창한 지역이었다. 고려 시대 마애불은 사람들 가까이에 조성되거나 길목이나 강가 주변 암벽에 조성된 경우가 많은데, 김해 봉화산 마애여래좌상은 들판을 내려다보는 등산로에 있어 일대를 다니던 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목적으로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시대 불상 양식을 계승하였지만 고려 시대 지방 양식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로 김해 지역 불교 조각사에서 중요한 예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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