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4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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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 招仙臺 磨崖如來坐像 |
영어공식명칭 | Rock-carved Seated Buddha at Choseondae Rock, Gimha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김해대로2580번길 21[안동 685-1]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연진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4년 2월 16일 - 김해 초선대 마애여래좌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8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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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김해 초선대 마애여래좌상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김해 초선대 마애여래좌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에서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지정 |
현 소장처 | 금선사 - 경상남도 김해시 김해대로2580번길 21[안동 685-1] |
성격 | 마애불 |
재질 | 돌 |
크기(높이) | 5.1m[높이]|4.1m[몸통 높이]|1.1m[머리 높이]|4.1m[어깨너비]|0.8m[대좌 높이]|4.7m[대좌 너비] |
소유자 | 김해시 |
관리자 | 김해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안동에 있는 고려 후기 마애불.
[개설]
경상남도 김해시 안동 신어천과 국도 제14호선이 만나는 들판에 조성되어 도로를 직접 조망하는 위치에 있다. 김해 초선대 마애여래좌상 앞에 금선사(金仙寺)가 있으며 사찰과 공원 조성 등으로 인해 유구 및 유물은 확인되지 않는다. 김해 초선대 마애여래좌상 앞에 시멘트 불단이 조성되어 있고 주변에 담장을 둘렀다.
초선대(招仙臺)의 옛 이름은 ‘초현대(招賢臺)’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전설에는 가락국 거등왕(居登王)이 칠점산(七點山) 선인(仙人)을 초청하니, 배를 타고 거문고를 가져와서 서로 더불어 즐겼으므로 그대로 이름하였다. 왕이 앉았던 연화석과 바둑판 돌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라고 하였다. 초선대는 『고려사(高麗史)』에도 언급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 읍지류인 『김해부읍지(金海府邑誌)』, 『김해읍지(金海邑誌)』에 ‘대인상(大人像)’, ‘대인형(大人形)’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해 초선대 마애여래좌상은 거등왕의 초상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김해 초선대 마애여래좌상은 1974년 2월 16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8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는 삭제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에서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
[형태]
전체 높이는 5.1m로 자연 암벽에 너비 3㎝ 정도의 굵은 선으로 음각되어 있다. 몸통 높이는 4.1m, 머리 높이는 1.1m, 어깨너비는 4.1m, 대좌 높이는 0.8m, 대좌 너비는 4.7m이다. 원형 두광과 신광을 얕게 조각하였다. 나발 표현이 없는 민머리이며 정수리에는 낮은 육계가 표현되었다. 직사각형의 얼굴이며 좁은 이마에는 이마에 비해 큰 백호를 원형으로 표현하였다. 눈은 반개하여 옆으로 길고, 코는 콧방울이 크다. 입술은 도톰하고 큰 편이며 전체적으로 근엄한 인상을 준다. 귀는 어깨까지 내려오며 목에는 삼도를 새겼다.
법의는 양어깨를 덮은 통견을 입고 있다. 어깨에서부터 4~5줄의 세로줄로 옷 주름을 표현하였고, 옷깃에는 화문이 새겨져 있다. 양손은 가슴 앞으로 모았는데, 옷자락으로 가리고 있어 수인은 확인할 수 없다. 양손 아래로 떨어지는 옷 주름은 구불구불하게 표현하였다. 대좌는 반쪽은 떨어져 나갔고 반쪽만 남아 있다. 대좌에는 연꽃잎이 위로 향한 모양인 앙련이 표현되어 있으나 마모가 심하여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김해 초선대 마애여래좌상은 5m가 넘는 거대한 마애불로 굵은 선각으로 표현한 점에서 고려 시대에 조성된 마애불과 공통점을 보인다. 방형의 얼굴 표현, 반개한 눈과 큰 코 등은 양산 가산리 마애불입상과 함양 대대리 마애불입상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으며, 신체를 덮은 구불구불한 옷 주름의 표현이나 손발을 옷 주름으로 가린 모습 등은 충주 창동리 마애불과 유사하다. 김해 초선대 마애여래좌상은 거대한 자연 암벽에 음각으로 표현한 점, 간결한 옷 주름 표현 등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초선대는 거대한 암벽에 마애불이 새겨져 있고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 있는 만큼 김해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김해에 거주하는 시조 시인 이동배는 시조집 『흔적』에 「초선대」라는 시조를 썼으며, 전문은 다음과 같다. “가야금 뜯던 선인/ 바다를 일깨우며/ 초선대 극락정토/ 마애불로 새겨놓고/ 칠점산 사라진 흔적/ 금관가야 정원일세// 바다를 가르는/ 거등왕의 전설과/ 김해의 길목에서/ 덩그러한 바위 하나/ 우뚝 선 정자에 올라/ 웅성거리는 오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