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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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 興府庵 石造菩薩坐像 |
영어공식명칭 | Stone Seated Bodhisattva of Heungbuam Hermitage, Gimha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전하로 269-74[외동 23-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연진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9년 3월 5일 - 김해 흥부암 석조보살좌상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59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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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김해 흥부암 석조보살좌상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김해 흥부암 석조보살좌상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에서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지정 |
현 소장처 | 흥부암 - 경상남도 김해시 전하로 269-74[외동 23-1] |
성격 | 석조 불상 |
재질 | 돌 |
크기(높이) | 51㎝[높이]|37㎝[무릎 폭] |
소유자 | 흥부암 |
관리자 | 흥부암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외동 흥부암에 있는 조선 후기 석조 보살 좌상.
[개설]
흥부암은 경상남도 김해시 외동 임호산[179.6m]에 있다. 일설에 의하면 흥부암은 허왕후 오빠인 장유화상(長游和尙)이 서기 48년에 가락국의 흥성을 빌기 위해 수로왕의 명을 받아 탑을 세우고 절을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오랫동안 폐사되었다가 1700년(숙종 26)에 중창하였고, 1760년(영조 36)에도 중수하였다. 1820년(순조 20)에는 김해부사 유상필의 후원을 받아 법당 등 전각을 중건하였으며 19세기 중반에 또 한 번 중창하였다. 이후 1985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89년 복원하였고, 2018년 4월 화재로 명부전이 전소되었다. 현대에 중창된 이래 산사 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며 김해 지역민과 함께하는 위안처로 거듭나고 있다.
김해 흥부암 석조보살좌상은 경상도 지역에서 많이 조성된 불석으로 제작되었으며 삼존상 가운데 본존불의 우협시로 추정된다. 18세기 불상 조각 양식의 특징을 잘 볼 수 있어 2009년 3월 5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59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는 삭제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에서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되었다.
[형태]
김해 흥부암 석조보살좌상은 높이 51㎝의 소형 불상으로 신체와 비교하면 얼굴이 크며 무릎이 높고 어깨는 좁다. 무릎 폭은 37㎝이다. 원통형 보관을 쓰고 있으며 보관에는 문양이 없다. 보발은 귀를 한 번 감고 어깨로 흘러내려 세 가닥으로 나뉘며, 귀는 다소 짧은 편이다. 방형의 얼굴에 눈매는 길고 가늘며 코는 눈썹부터 이어져 두툼하게 표현해 다부진 인상을 준다. 입술을 다물고 있으나 입꼬리를 아주 살짝 올려 근엄하지만 자애로운 모습이다. 짧은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어 있고, 가슴에는 양감이 없이 밋밋하다.
법의는 내의를 입고 양어깨를 덮은 변형식 통견으로 가슴 아래 승각기가 일자로 가로지르며 양 목 옆 옷깃을 한번 접었다. 배 아래로는 U자형을 이루며 대의가 흘러내리고, 양 무릎 사이로는 대칭되게 옷 주름이 펼쳐진다. 신체와 비교하면 손은 다소 크게 조각하였다.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려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엄지손가락을 살짝 굽혔고, 왼손은 왼쪽 무릎 위에 올린 후 손바닥을 아래로 하여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이는 김해 흥부암 석조보살좌상과 대치되는 협시가 존재하였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원래는 삼존상의 우협시 보살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김해 흥부암 석조보살좌상은 얼굴의 표현이나 옷 주름의 표현, 수인의 모습 등을 통해 조선 후기에 조성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1684년(숙종 10) 기장 장안사 석조석가모니삼존상의 보살 좌상과 유사한 면이 있으나 세부 표현 등에서 시기 차이를 보여 18세기에 조성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원문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조성 시기나 조각승은 알 수 없지만, 흥부암이 18세기에 대대적으로 중창한 점, 지속해서 중수가 이루어진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이동이 없었다는 전제하에 비슷한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