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5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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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 詩禮里 念修堂 |
영어공식명칭 | Gimhea Sirye-ri Yeomsu-dang(house)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진례로311번길 107[시례리 316]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순강 |
건립 시기/일시 | 1854년 - 김해 시례리 염수당 사랑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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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865년 또는 1925년 - 김해 시례리 염수당 안채 건립[추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1년 - 김해 시례리 염수당 사랑채 개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6년 7월 20일 - 김해 시례리 염수당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02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김해 시례리 염수당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
현 소재지 | 김해 시례리 염수당 -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진례로311번길 107[시례리 316] |
성격 | 전통 가옥 |
양식 | 목조 와가 |
정면 칸수 | 5칸[안채]|5칸[사랑채] |
측면 칸수 | 1.5칸[안채]|1.5칸[사랑채] |
소유자 | 안봉환 |
관리자 | 안봉환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시례리에 있는 근대기의 가옥.
[개설]
주택의 명칭인 ‘염수당(念修堂)’은 『시경(詩經)』에 나오는 ‘조상을 생각하고 덕을 닦으라’는 의미로 추정된다. 김해 시례리 염수당은 김해시 진례면 시례리의 상촌마을에 위치하는데, 이 상촌마을은 예동(禮洞)으로 불리고 있다. 성리학적 기본 관념인 예를 숭상하는 마을임을 알 수 있다. 시례리는 광산 김씨들이 모여 살고 있었는데, 임진왜란 이후 안경지(安敬祉)가 함안에서 처가인 시례리로 입향하여 광주 안씨들의 마을이 되었다.
[위치]
김해 시례리 염수당은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진례로311번길 107[시례리 316]에 위치하고 있다. 상촌마을회관에서 진례로311번길을 따라 북쪽으로 약 71m 지점 삼거리에서 서쪽으로 약 38m를 가면 김해 시례리 염수당에 도착한다. 노현에 발원한 혼법천의 지류 옆에 위치한 계곡 사이에 자리하여 지형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변천]
안채는 대청 종도리 장여 상량문에 ‘을축사월(乙丑四月)’로 기록되어 1865년 내지는 1925년에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랑채는 대청 종도리 장여 묵서명에 의하면 ‘상지사년갑인오월(上之四年甲寅五月...)’이라 하여 1854년에 건립된 것을 알 수 있다. 가묘(家廟)도 안채와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대문채와 기타 부속 건물은 1970년대 이후에 신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랑채는 1971년에 갈대집에서 현재의 일식 기와로 교체되었다. 1999년 8월 3일 광주 안씨 종가에서 소장 중인 고문서가 ‘김해 시례 염수당 고문서’라는 이름으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2006년 7월 20일 김해 시례리 염수당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02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는 삭제되었다.
[형태]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실의 구성은 왼쪽부터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1칸, 대청 1칸,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2칸, 부엌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부엌은 입식으로 개조되어 원형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변경되어 있다. 기단은 자연석을 3~4벌대 허튼층으로 쌓았으며, 상부는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하였다. 초석은 자연석 그대로를 이용한 덤벙주초를 이용하였으며, 기둥은 사각 기둥을 사용하였다. 건축 형식은 장여만을 장식한 장여수장집이며 도리는 사각형의 납도리를 사용하였다. 상부 가구는 도리가 3개인 3량가이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며, 한식 기와로 마감하였는데 암수막새를 사용하여 안채의 위계를 강조하였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실의 구성은 좌측부터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1칸, 대문간 1칸, 대청 1칸,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2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좌측 온돌방은 중사랑방이며, 젊은 종손이 사용하는 방이다. 대문간은 사랑마당에서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으로 ‘염수재(念修齋)’로 편액되어 있으며, 대청은 안마루라고 한다. 우측 온돌방은 작은 사랑방과 큰 사랑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큰 사랑방 앞에는 ‘예강서실(禮岡書室)’이라는 편액이 달려 있다. 사랑채의 기단 높이는, 안마루와 작은 사랑방 그리고 큰 사랑방의 기단은 자연석으로 3~4벌대 허튼층으로 쌓았다. 중사랑방과 대문간의 기단은 자연석으로 1~2벌 허튼층으로 쌓아 작은 사랑방이 큰 사랑방보다 기단 높이가 낮게 조성해 놓았다. 그래서 대문간과 중사랑방의 기둥 길이를 길게 하여 지붕 높이를 맞추었다. 이는 중사랑방과 대문간의 높이를 낮추어 위계를 표현하려는 의도로 생각된다. 초석은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덤벙주초이며, 기둥은 정면에만 둥근 기둥을 사용하였다. 나머지 기둥은 사각 기둥을 사용하였다. 건축 형식은 장여로만 장식한 장여수장집이지만, 정면 기둥 상부에만 짧은 창방과 소로를 사용한 소로수장집이다. 이는 근대기적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도리는 둥근 도리를 사용한 굴도리집이며, 상부 가구는 도리가 3개인 3량가이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며, 기와는 일식 기와로 마감되어 있다.
대문채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가묘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집이다.
[현황]
김해 시례리 염수당의 배치는 가묘·안채·사랑채·대문채가 남북축선상에 남향하여 배치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는 안마당이 조성되어 있는데, 안마당의 서쪽에는 토벽으로 건립한 창고가 있으며, 동쪽에는 아래채가 배치되어 있다. 그래서 안마당은 튼 ㅁ자형 배치를 하고 있다. 사랑채의 동쪽에도 시멘트 블록 창고가 있으며 대문채의 동쪽에도 블록 창고가 있다. 그래서 사랑채와 대문채 사이에는 사랑마당이 형성되어 있다. 사랑마당의 서쪽에는 화단을 만들었는데, 100년 된 소나무 두 그루와 문화재 안내판이 배치되어 있다. 안마당과 사랑마당은 사랑채에 조성된 중문을 통해 연결된다. 안채의 후면에는 사당이 배치되어 있는데, 담장을 둘러 독립적으로 조성해 놓았다. 사당 뒤에 예강재(禮崗齋)가 신축되어 있는데, 이는 유학자로 이름난 예강(禮崗) 안언호(安彦浩)[1853~1934]를 기리는 재실이다.
[의의와 평가]
김해 시례리 염수당은 광주 안씨들이 모여 사는 시례마을의 종가이며 안채와 사랑채를 비롯한 가묘가 구성되어 근대 시기 양반들의 주거 문화를 잘 알 수 있는 주택이다. 특히 가묘는 김해 지역에서 흔하지 않은 유구이다. 안마당의 영역과 사랑마당의 영역이 분화되어 조선 시대 양반가의 주거 형태를 따르고 있지만, 안채의 대청의 축소, 중문채가 사랑채에 부가되어 설치된 실리적인 배치, 토벽으로 건립한 창고는 부농형 주택의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사랑채 기단의 높이 처리 방식, 정면 기둥 상부에만 소로수장으로 장식한 점은 근대기의 한옥 특징을 잘 보여 주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