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554
한자 金海 日新齋
영어공식명칭 Ilsinjae House, Gimhae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덕정로77번길 11-8[관동동 586-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순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17년 - 김해 일신재 건립[추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12년 10월 11일연표보기 - 김해 일신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49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김해 일신재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현 소재지 김해 일신재 - 경상남도 김해시 덕정로77번길 11-8[관동동 586-1]지도보기
성격 전통 가옥
양식 목조 와가
정면 칸수 4칸[사랑채]|4칸[안채]
측면 칸수 2칸[사랑채]|2칸[안채]
소유자 이종석
관리자 이종석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관동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가옥.

[개설]

김해 일신재(金海 日新齋)전주 이씨 덕양군파 서계령 종중의 후손 월헌(月軒) 이보림(李普林)[1902~1972]이 덕정마을[관동리]에 건립한 주택 겸 강학소이다. 덕양군파는 중종의 제5남 이기(李岐)를 파시조로 하는데, 소요재(逍遙齋) 이춘흥(李春興)이 신임사화 때 경기도 여주에서 덕정마을로 입향하였다. 이후 전주 이씨들의 후손들이 번창하여 집성촌이 되었다. 이보림은 소요재의 7대손이며 아버지는 봉정(鳳亭) 이승기(李承驥)이다. 이보림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의 제자가 되어 기호학파의 학문을 계승하고, 일제 강점기에 조선에 대한 의리를 지키며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이보림이 고향에 돌아와 월봉서당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그 아래에 김해 일신재를 건립하여 주택과 강학소로 이용하였다. 김해 일신재이보림의 둘째 아들인 화재(華齋) 이우섭(李雨燮)[1931~2007]이 출생한 곳으로 이우섭은 아버지 이보림의 기호학맥을 이어받았다. 또 기호학맥을 이은 추연(秋淵) 권용현(權龍鉉)[1899~1988]의 제자가 되었으며, 또한 도산서원에서 독서를 하면서 퇴계학맥과 교류하기도 하였다.

[위치]

김해 일신재는 경상남도 김해시 덕정로77번길 11-8[관동동 586-1]에 위치하고 있다. 덕정사거리에서 북쪽에 조성된 계동로에 덕정로77번길로 접어들어 덕정마을회관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율하천의 상류 좌안에 위치하는데, 불모산과 반룡산을 잇는 능선의 남쪽 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좌향은 남향을 하고 있으며, 지형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김해 일신재의 북쪽에는 월봉서당이 위치하고 있다.

[변천]

정확한 건립 연도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지적원도에서도 확인되지 않아 1913년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축 양식이 월봉서당과 유사하여 1917년 무렵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해 일신재는 2012년 10월 11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49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는 삭제되었다.

[형태]

건물은 안채와 사랑채가 남북축선상에 二자형으로 남향하여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의 정면에는 대문이 있으며 사랑채의 서북쪽 모서리에는 협문(夾門)이 조성되어 있다. 안채의 서쪽에는 현대에 조성된 철제 대문이 있고 동쪽에는 아래채가 조성되어 있다. 김해 일신재는 크게 사랑채 영역과 안채 영역 두 곳으로 구분되는데, 이 두 영역에는 담장을 쌓아 공간을 구분하고 있다. 대문채는 사랑채의 정면에 배치하는데, 1칸 규모의 협문 형식으로 되어 있다.

사랑채의 명칭은 ‘일신재(日新齋)’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측면은 전후 툇간이 있어 2칸 규모이다. 실의 구성은 좌측부터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1칸, 대청마루 2칸,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칠게 가공한 석재를 외벌대로 쌓고 윗면은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하였다. 초석은 사각형으로 다듬은 초석을 사용하였으며, 기둥은 사각 기둥을 이용하였다. 건축 형식은 장여로 수장한 장여수장집이지만, 정면의 기둥 위에만 소로수장집(小櫨修粧-)처럼 장식을 해 놓았다. 이런 형태는 월봉서당과 유사한 형태이다. 도리는 사각형의 도리보다 위계가 높은 둥근 도리를 사용하였고, 모두 다섯 개가 사용되어 5량가이다. 지붕은 모두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기와는 일식 기와를 사용하였는데, 막새는 이용하지 않았다. 사랑채의 정면에는 유리창문을 설치하였는데, 창문을 개방할 때에는 오른쪽에 보관함을 만들어 여러 장의 창호를 한 번에 보관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랑채의 마당에는 정면 기단과 접해 작은 사각형의 연못을 만들고 작은 저수조를 여러 개 만들어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여러 단계를 거처 연못으로 모일 수 있도록 하였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측면은 전후면에 툇간이 있어 2칸 규모이다. 실의 구성은 좌측부터 부엌 1칸,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1칸, 툇마루가 딸린 마루방 1칸,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온돌방 정면 창호의 하단에는 머름이 생략된 형태여서 사랑채와는 다른 양상이며 이는 근대기적 특징이 잘 보여 주고 있다. 기단은 거칠게 가공한 석재를 이용하여 세벌대로 쌓았는데, 위의 1단은 안으로 들여 쌓아 마치 월대처럼 보인다. 초석은 가공한 사각형의 초석을 이용하였으며, 기둥은 사각 기둥이다. 기둥 상부는 장여수장집이며, 도리의 형태는 사각형의 납도리를 사용하였다. 도리는 다섯 개인 5량가이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기와는 일식 기와를 사용하였으며, 막새는 사용하지 않았다. 안채의 서쪽에는 우물이 있으며, 동남쪽에는 아래채가 있다. 안채와 사랑채 주변에는 담장을 쌓아 독립적인 공간을 조성해 놓았다.

[현황]

김해 일신재 북쪽에는 월봉서당이 있으며, 서쪽에는 이우섭이 건립한 연강재(蓮岡齋)가 배치되어 있다. 현재 후손이 거주하고 있으며, 정면에는 도시화로 인해 경관이 많이 변해 있다.

[의의와 평가]

김해 일신재는 영남 지역의 기호학파의 학맥을 계승한 월헌 이보림이 건립한 주택 겸 후학을 기르기 위한 강학 시설이다. 이보림의 아들 이우섭이 여기에서 출생하여 가학인 기호학을 계승하였다. 배치는 김해 지역의 전통적인 배치 양식을 잘 따르고 있지만, 평면에서 전후면에 툇간이 부가된 점, 가공한 석재의 사용, 건실한 부재의 사용, 마루의 축소 및 창호 설치, 유리 창호의 사용. 안채 머름의 생략, 사랑채 정면 기둥 상부에만 소로수장을 한 점을 보면 근대기 한옥의 변화 양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사랑채의 유리 창호문을 조성한 방법이 주목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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