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5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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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 華山精舍 |
영어공식명칭 | Hwasanjengsa House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관동로27번길 5-37[관동동 337]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순강 |
건립 시기/일시 | 19세기 말 - 김해 화산정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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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20년 - 김해 화산정사 개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2년 10월 11일 - 김해 화산정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50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김해 화산정사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
현 소재지 | 김해 화산정사 - 경상남도 김해시 관동로27번길 5-37[관동동 337] |
성격 | 재실 |
양식 | 목조 와가 |
정면 칸수 | 4칸[정당]|3칸[대문채] |
측면 칸수 | 2칸[정당]|1칸[대문채] |
소유자 | 전주 이씨 덕양군파 서계령 종중 |
관리자 | 전주 이씨 덕양군파 서계령 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관동동에 있는 근대기 전주 이씨 재실 겸 강학소.
[개설]
김해 화산정사(金海 華山精舍)는 전주 이씨 덕양군파 서계령 종중의 후손 농은(濃隱) 이경현(李慶鉉)[1859~1936]이 아버지 이주국의 묘 아래에 건립한 재실이며, 손자 월헌(月軒) 이보림(李普林)[1903~1972]을 공부시키기 위해 글방 선생을 초빙하여 강학소의 역할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지역 유림들의 강론과 교류의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김해 화산정사가 위치한 관동동은 전주 이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으로 덕양군파는 중종의 제5남 이기(李岐)를 파시조로 한다. 조선 시대 소요재(逍遙齋) 이춘흥(李春興)이 신임사화 때 경기도 여주에서 덕정마을로 입향하면서 전주 이씨들의 집성촌이 되었다. 김해 화산정사의 뒤쪽 산에는 전주 이씨 가문의 선산이 있어 전주 이씨 묘들이 많이 조성되어 있다. 김해 화산정사의 현판은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의 글씨이며, 서쪽의 협문이 독경문(篤敬門)인데, 송대의 유학자인 주자(朱子), 퇴계 이황(李滉), 간재 전우의 글씨를 모은 것이라 한다. 그래서 기호학파와 영남학파의 상호 존중과 통합을 의미한다고 한다.
[위치]
김해 화산정사는 경상남도 김해시 관동로27번길 5-37[관동동 337]에 위치하고 있다. 장유3동행정복지센터에서 북쪽의 반룡산공원 방향으로 향하면 외길이 나오는데 이 도로의 끝에 김해 화산정사가 있다.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율하천의 상류 좌안에 위치하는데, 불모산과 반룡산을 잇는 능선의 남쪽 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좌향은 남향을 하고 있으며, 지형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변천]
19세기 말에 건립되어 1920년에 개축되었다. 정당 대청 상부의 상량문에 ‘개국오백삼십년경신사월이십일기시상량입주(開國五百三十年庚申四月二十日己時上樑立柱...)’라는 기록에서 1920년에 고쳐 지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12년 10월 11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50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는 삭제되었다.
[형태]
김해 화산정사는 정당과 대문채가 남북축선상에 二자형으로 남향하여 배치되어 있고 담장을 둘러 공간을 구획하였다. 정당의 서남쪽에는 협문인 독경문이 있으며, 동쪽에는 이경현과 이홍현의 송덕비가 건립되어 있다. 정당의 동남쪽에는 화장실이 2칸 규모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김해 화산정사 담장 외부의 서쪽에는 관리사가 배치되어 있다.
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실의 구성은 중앙의 대청 2칸을 중심으로 좌우에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1칸이 각각 구성되어 있다. 측면에 전후 툇간을 배치하여 2칸의 규모이며, 이는 월봉서당(月峯書堂)과 일신재(日新齋) 등에서 보이는 구성 방법과 유사하다. 좌측의 온돌방은 ‘낙요재(樂要齋)’인데, ‘책을 읽는 것이 천하의 지극한 즐거움이 되고 자신을 가르치는 것이 천하의 중요함이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대청은 ‘치치당(致致堂)’이라 하였는데,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좌측의 온돌방은 ‘염수재(念修齋)’로 ‘조상을 생각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기단은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으로 3벌대로 허튼층으로 쌓았으며, 상부는 잘 가공한 판석으로 마감하였다. 초석은 가공한 원형과 사각형을 이용하였으며, 기둥은 둥근 기둥과 사각 기둥을 사용하였다. 정면에만 둥근 기둥을 사용하여 정면성과 위계를 강조하였다. 건축 형식은 소로(小櫨)로 수장한 소로수장집이며, 도리는 둥근 굴도리를 사용하였다. 상부 가구는 도리가 다섯 개인 5량가이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며, 한식 기와로 마감을 하였는데, 암수막새를 사용하여 위계를 높였다.
대문채는 이례문(以禮門)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실의 구성은 중앙의 대문채를 두고 좌측에 온돌방을 두었다. 우측에는 2층 구조로 되어 있는데, 하부는 창고이며 상부는 마루로 되어 있다. 그래서 마루로 오르는 계단이 북쪽에 설치되어 있다. 마루의 명칭은 ‘청통헌(淸通軒)’으로 휴식을 위한 공간이다. 청통헌 동남북쪽 삼면에는 계자각 난간을 설치하여 장식을 하였다. 이례문의 정면에는 김해 화산정사로 들어가는 계단을 설치해 놓았으며, 기단은 거칠게 다듬은 돌로 외벌대로 조성해 놓았다. 초석은 원형으로 가공한 돌을 사용하였다. 기둥도 모두 둥근 기둥을 사용하였다. 건축 형식은 장여만을 장식한 장여수장집이지만, 대문칸에서만 창방과 소로를 올린 소로수장집으로 대문칸의 위계를 강조하였다. 도리는 네모난 납도리를 사용하였지만, 대문칸에서만 둥근 굴도리를 사용하였다. 상부 가구는 도리가 3개인 3량가 구조이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며 한식 기와를 사용하였는데, 암수막새를 이용하였다.
[현황]
김해 화산정사는 산속에 자리하여 도시화된 장유동과는 떨어져 있는 듯 하여 도심 속의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다. 김해 화산정사 뒤쪽에는 전주 이씨 선조들의 묘소들이 군집을 이루어 조성되어 있다. 그래서 재실의 분위기가 잘 나타나고 있다. 현재 후손이 관리사에 기거하며 관리를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기호학맥을 계승한 월헌 이보림이 수학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구성과 배치는 경상도 남부 지역 전통적인 재실의 배치 양식을 잘 따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웅장한 외관, 평면에서 전후면에 툇간이 부가된 점, 가공한 석재의 사용, 건실한 부재의 사용, 소로수장을 한 점을 보면 재실의 위계를 강조한 특징이 있다. 대문채에 대문칸에만 소로수장을 한 점, 대문채에 작은 누마루 형식를 부가한 점은 근대기 재실 및 한옥의 변화 양상을 잘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김해 화산정사는 근대기 지역 양반들의 제례 의식을 반영하는 유교적 건물이며, 또한 근대기 전통 건축의 변화 양상을 파악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는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