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5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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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七山齋講堂 |
영어공식명칭 | Lecture Hall of Chilsanjae Ritual House, Gimhae |
이칭/별칭 | 칠산재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칠산로237번길 46-40[화목동 1334]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순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58년 - 김해칠산재강당 중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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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3년 10월 30일 - 김해칠산재강당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36호 지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5년 - 김해칠산재강당 재실 보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5년 - 김해칠산재강당 전사청 증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5년 - 김해칠산재강당 긍구당 증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6년 - 김해칠산재강당 담장 설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6년 - 김해칠산재강당 배수로 설치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김해칠산재강당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김해칠산재강당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에서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김해칠산재강당 - 경상남도 김해시 칠산로237번길 46-40[화목동 1334] |
성격 | 재실 |
양식 | 목조 와가|겹처마 팔작지붕집[재실]|겹처마 맞배지붕집[사당] |
정면 칸수 | 4칸[재실]|3칸[사당] |
측면 칸수 | 1.5칸[재실]|1칸[사당] |
소유자 | 분성배씨대종회 |
관리자 | 분성배씨대종회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화목동에 있는, 분성 배씨의 선조를 봉안한 재실.
[개설]
칠산재(七山齋)는 분성 배씨(盆城 裵氏)의 시조와 중시조, 분관 시조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과 병부상서 배원룡(裵元龍)의 묘 인근에 건립된 재실이다. 분성 배씨의 시조는 신라 시대 한지(漢祗) 배지타(裵祗沱)이며, 중시조는 무렬(武烈) 배현경(裵玄慶)이다. 분관조(分貫祖)는 배원룡으로 김해 땅을 식읍(食邑)으로 받았다. 배원룡은 박위(朴葳)와 함께 산성을 축성하여 왜를 토벌한 인물이다. 조선 후기 후손들이 실묘(失墓)되었던 배원룡의 묘를 찾았으며, 배문창(裵文昶)이 만구(晩求) 이종기(李種杞)[1837~1902]에게 부탁하여 묘갈명을 적었다. 1913년에 제작된 지적 원도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이후 1967년의 항공 사진에서 확인되어 이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한다.
[위치]
칠산재는 김해시 화목동 1334번지, 김해평야(金海平野) 서쪽에 자리한 작은 구릉인 칠산(七山)[89.8m]의 남쪽 능선부에 위치하고 있다. 김해시 칠산로에서 칠산로237번길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길의 끝에 작은 삼거리가 나오는데, 삼거리에서 한림로343번길을 따라 서쪽으로 약 250m 가면 칠산재에 도착한다. 길은 포장이 되어 있지만 좁다.
[변천]
실묘된 배원룡의 묘를 조선 후기에 찾아 묘비를 세웠으며, 편액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1958년에 사당과 재실을 중창하였다. 2005년 재실을 보수하였고, 전사청과 긍구당을 증축하였다. 2006년에는 주변에 담장과 배수로를 설치하였다.
[형태]
대문채와 재실, 사당은 남서향을 하고 있다. 대칭적인 구조와 축선상의 배치는 재실의 전형적인 배치 방법을 따르고 있다. 대문채와 재실은 ‘二’ 자형으로 놓여 있고, 담장을 둘러 재실 영역을 구획하였다. 최근 조성한 전사청(典祀廳)과 긍구당(肯構堂)이 서쪽에서 나란히 동남향하여 전체적으로 튼 ‘ㄷ’ 자형을 하고 있다. 재실은 정면 4칸, 측면 1.5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집이다. 측면 중앙에 기둥을 하나 더 세워 마치 3칸처럼 보인다.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을 두었다. 대청과 온돌방 사이에는 4분합 들문을 달아 공간을 융통성 있게 사용하게 하였다. 좌측의 온돌방은 ‘돈숭당(敦崇堂)’이며, 우측 온돌방은 ‘여재실(如在室)’이다. 기단은 다듬은 자연석을 2벌~3벌대 허튼층으로 쌓았으며, 상부는 강회다짐으로 마감하였다. 초석은 자연석 그대로를 이용한 덤벙 주초를 이용하였고, 기둥은 둥근기둥을 사용하였다. 건축 형식은 장여로 수장한 장여 수장집이지만 정면은 2익공 형식으로 장식하였다. 따라서 정면성이 매우 강조되어 있으며, 배면에 공포를 설치하지 않아 실리적인 기법을 채용하였다. 도리도 사각형의 납도리를 사용하였지만 정면에만 둥근 굴도리를 사용하였다. 상부 가구는 도리가 5개인 5량가이고, 중도리 장여 하부에는 짧은 장여를 2중으로 처리하여 구조의 보강 및 장식 효과를 주었다. 지붕은 한식 기와로 암막새와 수막새로 마감하였다.
사당 영모사(永慕祠)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집이다. 기단은 가공한 석재를 외벌대로 쌓았으며, 기단 윗면은 강회다짐을 하였다. 초석은 둥글게 가공한 원형 초석을 사용하였고, 기둥은 둥근기둥을 사용하였다. 건축 양식은 초익공이며, 도리는 둥글게 가공한 굴도리를 사용하였다. 지붕은 한식 기와로 암막새와 수막새를 사용하였고, 금단청을 하여 위계를 높였다. 대문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솟을삼문이며, 긋기단청을 하였다.
[현황]
김해칠산재강당은 2003년 10월 3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36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는 삭제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에서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되었다. 소유자 및 관리자는 분성배씨대종회이다.
대문채의 동쪽에는 2005년 중건 공사에 공헌한 후손들의 감사비가 세워져 있고, 대문채의 서쪽에는 기부자의 명단을 조성해 놓았다. 칠산재 북쪽 담장에서 위쪽으로 약 50m 지점에는 분성 배씨 분관조인 배원룡의 묘소가 있다. 사당의 동쪽 담장 밖 가까이에는 배원룡의 신도비가 조성되어 있다. 근처에는 금관가야의 고분군인 김해칠산동고분군(金海七山洞古墳群)[경상남도 기념물]이 있으며, 칠산재 앞에 문화유산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칠산재는 현대에 중건된 재실이지만 전통적인 재실의 배치 방법을 따르고 있다. 묘하(墓下)[산소가 있는 땅]에 건립되었지만 별도의 위패를 봉안한 점, 그리고 시조·중시조를 함께 봉안한 점은 현대에 변화되어 가는 재실의 양상을 잘 보여 주는 예이며, 더불어 현대의 숭조 사상도 알 수 있는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