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603
한자 慶州 崔氏
영어공식명칭 Gyeongju Choissi|Gyeongju Choi Clan
이칭/별칭 월성 최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백지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570년연표보기 - 최계덕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621년연표보기 - 최계덕 사망
본관 경주 최씨 본관 - 경상북도 경주시
입향지 경주 최씨 입향지 - 경상남도 김해시 유하동
세거|집성지 경주 최씨 세거지 - 경상남도 김해시 유하동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경주 최씨 세거지 -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 망덕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최치원
입향 시조 최계덕

[정의]

최치원을 시조로 하고 최계덕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김해시의 세거 성씨.

[개설]

경주 최씨(慶州 崔氏)는 경상북도 경주를 본관으로 하며, 시조는 뛰어난 문장가로 『계원필경(桂苑筆耕)』 등의 작품을 남긴 최치원(崔致遠)이다. 최치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문묘 제향자이기도 하다.

[연원]

경주 최씨 가문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된 “고허부(高墟部)를 사량부(沙梁部)라 하고 성은 최로 하였다.”의 기사를 바탕으로 신라 사량부 촌장 소벌도리(蘇伐道利)를 원조(元祖) 삼고, 소벌도리의 후손인 최치원을 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최치원·최승우(崔承祐)·최언위(崔彦撝) 등 이른바 ‘삼최(三崔)’가 중앙으로 진출하여 고려 전기 성세를 유지하였다. 고려 중기 가세가 쇠미하여졌으나, 고려 후기에 최여해(崔汝諧)와 최해(崔瀣) 등이 사족(士族)화의 길을 걸었다. 이후 조선 시대 족세를 번성시키며 전국 각지에 분산되었다.

[입향 경위]

경주 최씨 김해 입향조는 최계덕(崔繼德)[1570~1621]이다. 최계덕은 최예(崔汭)의 후손으로, 1600년께 지금의 김해시 유하동 하손마을로 들어와 정착한 것으로 전한다.

[현황]

1929년 『김해읍지(金海邑誌)』 성씨조에는 이북면 가산리(佳山里), 주촌면덕암리(德巖里)·신답리(新畓里)와 지금의 부산광역시 지역인 옛 명지면의 신전리(新田里)와 동리(東里), 녹산면(菉山面)의 범방리(泛舫里)·중곡리(中谷里)·산양리(山陽里) 등의 주요 성씨로 경주 최씨가 기재되어 있다. 2015년 통계청의 ‘인구 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김해 지역에는 경주 최씨 1만 3071명, 월성 최씨 1,078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주요 세거지로 장유면 유하리 하손마을, 주촌면 망덕리 망덕마을 등이 있다.

[관련 유적]

김해군 장유면 무계리[현 경상남도 김해시 무계동] 장터에서 일어난 3·1 만세운동의 주동자 중 한 명인 최현호(崔鉉浩)를 기념하는 ‘의사용강최공기적비(義士龍岡崔公紀蹟碑)’가 김해시 유하동 후포마을 입구에 있다. 이 밖에 최인택(崔仁澤)·최문택(崔文澤) 형제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최인택문택형제지비(孝子崔仁澤文澤兄弟之碑)’가 김해시 삼계동 화정공원 안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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