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173
한자 柳下洞
영어공식명칭 Yuha-dong
이칭/별칭 유등이,유등야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유하동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4월 1일 - 경상남도 김해군 장유면 유하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95년 5월 10일 - 경상남도 김해군 장유면 유하리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면 유하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2013년 7월 1일 -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면 유하리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유하동으로 개편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3년 7월 1일 - 경상남도 김해시 내덕동, 무계동, 부곡동, 신문동, 유하동을 관할하는 장유1동[행정동] 설치
성격 법정동
면적 1.73㎢
가구수 141가구
인구[남/여] 241명[남 132명/여 109명]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유하동은 김해시의 중심부에 자리하며, 북쪽과 동쪽은 김해시 주촌면, 남쪽과 서쪽은 김해시의 내덕동, 무계동, 부곡동과 접한다. 행정동은 장유1동이다.

[명칭 유래]

유하동의 지형이 풍수지리상 버들가지에 꾀꼬리의 집 모양인 유지앵소형(柳枝鶯巢形)이라 ‘유하(柳下)’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지명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김해의 서쪽 들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우리말을 한자로 차자(借字)하여 ‘유하’라 이름하였다고 주장한다.

[형성 및 변천]

유하동은 고려 시대 유하촌 지역이었다. 1789년(정조 13)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지금의 유하동을 관할하는 장유1동과 함께 장유2동, 장유3동이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의 유등야면(柳等也面) 지역으로, 18개 리[북포리(北浦里), 하손리(下孫里), 부곡리(釜谷里), 유등야리(柳等也里), 내덕리(內德里), 외덕리(外德里), 거물소리(巨勿所里), 신문리(新門里), 건림리(件林里), 대청리(大淸里), 제며리(濟旀里), 상점리(上店里), 사기점리(沙器店里), 덕정리(德亭里), 적항리(赤項里), 관동리(寬洞里), 장유리(長遊里), 태장리(台長里)]를 관할하였다. 유등야면은 1810년(순조 10) 유하면(柳下面)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879년(고종 16) 다시 유등야면이 되었고, 1885년(고종 22) 장유면으로 바뀌었다. 1888년 장유면이 장유면 8개 리[부곡리, 유하리(柳下里), 내덕리, 무계리(茂溪里), 대청리, 삼문리(三文里), 신문리(新文里), 관동리]와 수남면 4개 리[율하리(栗下里), 장유리, 응달리(應達里), 수가리(水佳里)]로 나누어졌다. 장유면과 수남면이 속한 김해 지역은 1895년(고종 32) 23부제가 시행되면서 진주부 김해군이 되었고, 1896년 13도제가 시행되면서 경상남도 김해군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개편 때 수남면과 장유면을 병합하여 김해군의 14개 법정면 중 하나인 장유면으로 하고, 유하리를 장유면의 법정리로 하였다. 1981년 7월 1일 김해읍이 시로 승격되며 김해군과 분리되었을 때 장유면은 김해군의 관할로 남았다. 1995년 5월 10일 김해군과 김해시가 통합하여 김해시 장유면 유하리가 되었다. 2013년 7월 1일 장유면이 행정동인 장유1동, 장유2동, 장유3동으로 분할, 설치되면서 유하리는 내덕리, 부곡리, 무계리, 신문리와 함께 각각 법정동으로 전환되어 장유1동의 관할이 되었다.

[자연환경]

유하동은 북쪽은 주지봉[273.5m]과 황새봉[272.9m], 서쪽은 용지봉[744.7m], 북서쪽은 매봉산[338.5m]이 둘러싸고 있다. 북서쪽에서 유하천이, 북쪽에서 내삼천이 흐르는 평지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현황]

2023년 12월 31일 기준 유하동의 면적은 1.73㎢이며, 141가구, 241명[남자 132명, 여자 10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자연 마을로 유하, 후포, 하손이 있다. 유하는 김해 김씨(金海 金氏)가 처음 터를 잡았다고 한다. 한때 90여 가구가 거주하는 큰 마을이었으나, 1990년대 중반 이후 공장들이 다수 입지하면서 마을 경관이 많이 변화하였다. 후포는 이전에 상후포, 하후포로 나누어져 있었으나 1970년대에 후포로 합쳐졌다. 후포와 하손으로 이어지는 낮은 산자락 끝을 ‘나루끄티’라 불렀는데, 이전 나루터 끝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1970~1980년대를 지나면서 초가집 대신 현대식 주택이 들어섰고, 현재의 도로들 대부분은 그때 조성되었다. 하손은 현재 유하동에서 가장 큰 자연 마을로 90여 가구에 200여 명이 살고 있다. 가장 오래된 성씨는 경주 최씨(慶州崔氏)인데 1600년쯤 세거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마을 모임 중에서 1920년에 결성된 여성들만의 모임인 송죽회(松竹會)가 있는데, 마을로 시집온 부녀자들만 가입할 수 있으며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유하동의 북쪽과 동쪽에 자리한 주촌면과는 남해고속도로가 경계선을 이룬다. 부산신항선이 유하동 중심부를 지나며, 2023년 10월 기준 부산-마산 복선전철 공사가 한창이다. 유하동의 중심 지역은 일반 공업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금속·자동차 정비·산업 용품 등의 공장들이 들어서 있다. 동쪽과 남서쪽은 자연 녹지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동쪽에 부경동물원과 가야 시대 유적지인 김해 유하패총(金海 柳下貝塚)이 있고, 서쪽에는 유하저수지가 자리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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