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 문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608
한자 南平 文氏
영어공식명칭 Nampyeong Munssi|Nampyeong Mun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신은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남평 문씨 본관 -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성씨 시조 문다성

[정의]

문다성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김해시의 세거 성씨.

[개설]

남평 문씨(南平 文氏)는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조선 후기 김해군 가락면 봉림리[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봉림동] 일대에서 세거하며 집성촌을 이루었다.

[연원]

남평 문씨의 시조는 신라 자비왕(慈悲王) 15년인 472년에 하들에서 전라남도 남평군으로 내려왔다는 문다성(文多省)이다. 문다성의 24세손이 고려 후기 원나라에서 목화 씨를 처음으로 전래한 문익점(文益漸)이다.

18세기 전반기에 작성된 『분성여지승람신증초(盆城輿地勝覽新增抄)』에서는 김해 지역의 남평 문씨와 관련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1832년(순조 32)에 작성된 『김해부읍지(金海府邑誌)』에는 남평 문씨가 가락면 봉림리 일대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따라서 남평 문씨가 본격적으로 김해 지역에서 세거한 시기는 19세기 초 즈음으로 판단된다.

19세기 이후 가락면 봉림리는 남평 문씨의 집성촌이 되었는데 1934년 조선총독부에서 작성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는 가락면 봉림리에 남평 문씨 35가구가 살고 있다고 나와 있다. 1929년 작성된 『김해읍지(金海邑誌)』에 따르면, 남평 문씨는 봉림마을 이외에 가락면 북정리(北亭里), 명지면의 진목리(眞木里)와 신전리(新田里)에도 세거하였다. 『조선의 성』에서 당시 명지면 진목리에는 김해 김씨(金海 金氏) 52가구, 분성 배씨 15가구, 밀양 박씨(密陽 朴氏) 16가구, 경주 이씨(慶州 李氏) 22가구가 거주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로 미루어 명지면 일대에서는 남평 문씨의 가세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가락면 봉림마을의 남평 문씨3·1운동에 적극 가담하는 등 마을의 토박이로서 상당한 가세를 이어 갔다.

[관련 유적]

옛 김해 지역이었던 지금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 오봉산 남쪽 아래 봉림마을에 남평 문씨의 종중 재실인 경모재(景慕齋)가 남아 있으며,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은 문위동(文渭東)의 묘소가 역시 옛 김해 지역이었던 부산광역시 강서구 봉림동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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