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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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府邑志 |
영어공식명칭 | Gimhaebu-eupj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배상현 |
편찬 시기/일시 | 1832년 - 『김해부읍지』[1832] 편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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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
성격 | 읍지 |
편자 | 김해도호부 |
권책 | 1책 |
행자 | 10행 20자 |
규격 | 35.0×22.6㎝ |
권수제 | 김해부읍지(金海府邑志) |
[정의]
1832년에 편찬된 경상남도 김해부의 읍지.
[저자]
경상도관찰사의 명으로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에서 편찬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김해부읍지(金海府邑志)』는 1832년경에 경상도관찰사의 명으로 경상감영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편찬되어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 수록되었다. 호구와 전부(田賦)를 1831년[신묘식]을 기준으로 하였고, 수록 인물에 대한 정보 또한 1832년을 넘지 않고 있다.
[형태/서지]
1책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35.0×22.6㎝이며,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권수제는 ‘김해부읍지(金海府邑志)’로 되어 있다. 경상도 고을의 읍지를 모아 편집한 『경상도읍지』 제10책에 수록되어 있는데, 맨 앞장에는 채색 지도가 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내용은 건치 연혁(建置 沿革)·군명(郡名)·관직(官職)·성씨(姓氏)·산천(山川)·풍속(風俗)·방리(坊里)·호구·전부·요역(徭役)·군액(軍額)·성지·임수(林藪)·창고·군기(軍器)·수진 군기(水陣 軍器)·관액(關阨)·진보(鎭堡)·봉수·학교·단묘(壇廟)·능묘·불우(佛宇)·공해(公廨)·도로·교량·도서(島嶼)·제언(堤堰)·장시(場市)·역원·목장·형승(形勝)·고적(古蹟)·진공(進貢)·봉름(俸廩)·환적(宦蹟)·인물·열행(烈行)·제영(題詠)·비판(碑板) 등 40여 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방리조에는 상동면·하동면(下東面)·활천면·좌부면(左部面)·우부면(右部面)·주촌면·진례면·율리면(栗里面)·하계면(下界面)·칠산면·유등야면(柳等也面)·태야면(台也面)·녹산면·명지도면(鳴旨島面)·하북면(下北面)·중북면(中北面)·생림면·대산면·장유면 등 19개 면이 수록되어 있어 19세기 초 김해부 면리제의 편제를 잘 보여 준다.
호구와 전부는 1831년을 기준으로 하였는데, 원호(元戶) 6,632호, 인구는 2만 4138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전부 항목에는 토지 결수와 조세의 정보를 같이 기록하였다. 원장부(元帳付) 전답이 1만 254결 49부 3속이고, 시기전(時起田)이 1,518결 28부 8속이며, 답(畓)이 4,103결 28부 6속이다. 전세미(田稅米)는 2,290석 3승 6합이며, 대동미는 3,371석 14두 8합으로 파악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1832년 편찬된 『경상도읍지』는 경상도 71개 고을을 대상으로 통일된 항목과 기술 형식을 취하고 있어 통계 자료로서 활용 가치를 평가 받는다. 여기에 수록된 『김해부읍지』[1832]는 19세기 초반 김해 지역의 인구와 경제적 실상이 반영되어 있어 사료적 가치가 인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