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6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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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達城 徐氏 |
영어공식명칭 | Dalseong Seossi|Dalseong Se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신은제 |
[정의]
서진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김해시의 세거 성씨.
[개설]
달성 서씨(達城 徐氏)의 시조는 서진(徐晉)이다. 조선 후기 달성 서씨는 옛 장유면(長有面) 부곡리(釜谷里)[현 김해시 부곡동], 진례면 고모리(古慕里), 녹산면(菉山面) 구랑리(九朗里)[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등지에서 세거하였다. 『김해읍지(金海邑誌)』[1929]에는 달성 서씨 서수원(徐壽源)의 효행을 기록한 대목이 있는데, 어머니가 10년 동안 병환으로 앓아 눕자 온 김해를 뒤져 약을 구하여 올려 김해 사람들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이에 효자비를 세워 주었는데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1855~1931]이 비명을 지었다고 한다.
[연원]
서진은 고려에서 공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봉하여졌고, 달성[현 대구광역시 달성구]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세거하게 되었다. 이후 3대에 걸쳐 ‘달성군’에 봉하여지고, 후손들도 달성에 세거하면서 본관을 달성으로 삼았다.
[현황]
1832년(순조 32)에 간행된 『김해부읍지(金海府邑誌)』에 따르면, 당시 달성 서씨는 김해군의 장유면 부곡리, 진례면 고모리, 녹산면 구랑리에 세거하고 있었다. 장유면 부곡리의 본래 이름은 ‘부량곡리(釜良谷里)’이며 그 뒤 부곡리로 고쳤고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냉정을 병합하였다. 부곡리에는 경주 최씨(慶州 崔氏)도 함께 세거하였다. 진례면 고모리는 달성 서씨만 거주하던 집성촌으로 추정된다. 녹산면 구랑리에는 동래 정씨(東萊 鄭氏), 경주 이씨(慶州 李氏), 김해 김씨(金海 金氏), 달성 서씨 등이 함께 세거하였는데 이 가운데 동래 정씨와 달성 서씨의 세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 세 마을은 행정 구역의 변경과 급격한 도시화로 인하여 옛 마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2024년 기준 김해 지역에서 달성 서씨의 세거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