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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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萊 鄭氏 |
영어공식명칭 | Dongrae Jeongssi|Dongrae Jeo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신은제 |
[정의]
정회문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김해시의 세거 성씨.
[개설]
동래 정씨(東萊 鄭氏)가 언제부터 김해 지역에서 세거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9세기까지 김해 5개 면의 6개 리에 세거하고 있었는데, 이들 지역은 본관인 동래[현 부산광역시 동래구]와 가까운 낙동강 서안 일대였다.
[연원]
동래 정씨는 신라 6부촌의 진지촌장(珍支村長) 지백호(智白虎)의 후손으로, 고려 때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 왔다. 동래 정씨의 족보인 『경신보』 총록에는, 서기 32년(신라 유리왕 9) 지백호가 정씨(鄭氏)로 사성(賜姓)되어 경주를 본관으로 하다가 뒤에 동래로 분적(分籍)하였다고 나온다.
[입향 경위]
조선 전기인 1515년(중종 10) 동래 정씨 정광필(鄭光弼)이 김해로 유배를 왔고, 김해와 동래가 가까운 거리에 있어 일찍부터 김해 지역에서 동래 정씨가 세거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동래 정씨의 세거지가 주로 낙동강 변인 김해시의 생림면과 한림면, 부산광역시 강서구의 가락동과 녹산동에 자리한 것은 본관인 부산광역시 동래구와 가까운 지리적 여건이 작용한 결과로 추정된다. 1730년대에 간행된 『분성여지승람신증초(盆城輿地勝覽新增抄)』 성씨조 신증에 동래 정씨가 기재된 것으로 보아 늦어도 18세기 전반기에는 김해 지역에 터를 잡고 살았음을 알 수 있다.
[현황]
1904년(고종 41)에 간행된 『경상남도 김해군 가호안(慶尙南道 金海郡 家戶案)』에는 생림면 나전리 하라전동의 20가구 가운데 정씨 1가구가 살았다. 생림면 봉림리의 경우 전체 114가구 가운데 15가구가 정씨였다. 『김해읍지(金海邑誌)』[1929] 성씨조에 따르면, 당시 동래 정씨는 김해군의 5개 면에 속한 6개 리에서 세거하였다. 그중 가락면(駕洛面) 제도리(濟島里)[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 지역]에는 순흥 안씨(順興 安氏)와 동래 정씨가 함께 살았고, 이북면(二北面)[현 한림면] 명동리(明洞里)에는 동래 정씨와 진주 강씨(晉州 姜氏)가, 생림면(生林面) 나전리(羅田里)에는 밀양 박씨(密陽朴氏)와 안동 권씨(安東 權氏), 동래 정씨가, 생림면 봉림리(鳳林里)에는 영양 천씨(潁陽千氏)와 경주 이씨(慶州 李氏), 동래 정씨가, 녹산면(菉山面) 구랑리(九朗里)[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지역]에는 동래 정씨와 경주 김씨(慶州 金氏), 김해 김씨(金海 金氏), 달성 서씨(達城徐氏)가 세거하였다. 주촌면(酒村面) 가곡리(歌谷里)에는 동래 정씨만 사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34년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는 주촌면 양동리(良洞里)와 이북면 명동리가 동래 정씨 집성촌으로 나온다.
2024년 기준 김해 지역에는 동래 정씨 세거지가 없고, 옛 김해군에 속하였던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구랑마을에 동래 정씨 세거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