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령 이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620
한자 載寧 李氏
영어공식명칭 Jaeryeong Issi|Jaeryeong I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경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재령 이씨 본관 - 황해도 재령군
입향지 재령 이씨 입향지 - 경상남도 김해시 삼방동 지도보기
성씨 시조 이우칭
입향 시조 이포

[정의]

이우칭을 시조로 하고 이소봉을 중시조로 하며 이포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김해시의 세거 성씨.

[개설]

재령 이씨(載寧 李氏)는 황해도 재령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는 고려의 중신 이우칭(李禹偁)이지만, 이후의 계대를 정확히 알 수 없어 고려 후기 상장군(上將軍) 이소봉(李小鳳)을 중시조[1세]로 한다. 김해 지역 입향조는 이포(李玸)이다.

[연원]

재령 이씨의 중시조[1세] 이소봉의 아들 이일선(李日善)은 여섯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 4남인 이오(李午)[모은공]는 성균관진사로 고려가 망하자 함안 모곡리로 이거하였다. 이오에게는 손자가 넷이 있었는데, 첫째인 이맹현(李孟賢)[근재공]과 둘째인 이중현(李仲賢)[율간공]은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으며, 넷째인 이계현(李季賢)[사의공]은 모곡에서 부모님을 봉양하였다. 둘째 이중현은 아들이 둘 있었는데, 첫째 이포(李玸)가 김해 삼방동으로 이거하여 김해파[사직공파]로 부른다. 이포의 손자는 이대형(李大亨)으로, 임진왜란김해성을 사수한 공로로 판결사에 증직되어 김해에서는 판결공파라고도 부른다. 둘째 이무는 함안의 모곡을 위시하여 함안 일대에 세거하고 있어 함안파라고도 부르고, 호가 덕고(德皐)라 덕고공파라고도 한다.

[입향 경위]

재령 이씨는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에 많이 살았으나 고려가 망한 뒤 개성을 떠나 김포, 인천, 청도, 밀양, 함안, 김해 등지로 내려와 살았다. 재령 이씨 김해 입향조는 중시조 이소봉의 6세손 이포로, 김해현감 백자정(白自精)의 딸과 혼인하며 지금의 김해시 삼방동으로 이거하며 정착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김해파[사직공파]로 분파하였다.

[현황]

김해에 세거하는 재령 이씨는 사직공파 후손들이 대부분이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당시 김해에 거주하는 재령 이씨는 376가구 1,317명으로 확인되어, 경주 이씨 3,899가구 1만 2951명, 전주 이씨 3,351가구 1만 1330명에 비해 가구와 인구수가 대략 10% 수준인 것으로 확인된다.

[관련 유적]

김해시 동상동이대형을 배향한 송담서원(松潭書院)이 있다. 송담서원[송담사]은 1708년(숙종 34) 지방 사림이 건립하였으며, 1833년(순조 33) 표충사(表忠祠)로 사액을 받았다. 1871년(고종 8)에 1592년(선조 25) 4월 20일[음력] 김해성전투(金海城戰鬪)에서 순절한 사충신[이대형, 송빈(宋賓), 김득기(金得器), 류식(柳湜)]을 기리는 사충단(四忠壇)을 건립하였다. 송담서원에서는 사충신이 순절한 날을 잊지 않기 위하여 매년 4월 20일에 추모제를 거행하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