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6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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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晋州 姜氏 |
영어공식명칭 | Jinju Gangssi|Jinju Gang Clan |
이칭/별칭 | 진양 강씨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광철 |
본관 | 진주 강씨 본관 - 경상남도 진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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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진주 강씨 세거지 - 경상남도 김해시 지내동 못안마을 |
성씨 시조 | 강이식 |
입향 시조 | 강원부 |
[정의]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원부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김해시의 세거 성씨.
[개설]
김해 지역의 진주 강씨(晋州 姜氏)는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하고 강계용(姜啓庸)을 중시조로 하는 박사공파(博士公派) 후손들이다. 진주 강씨가 김해 지역의 성씨로 소개되는 것은 1730년대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 『분성여지승람신증초(盆城輿地勝覽新增抄)』 성씨조부터이다. 이후 1786년(정조 10)에 간행된 『김해부읍지(金海府邑誌)』 성씨조에서는 본관을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강씨(姜氏)가 수록되어 있고, 1899년(고종 36)에 간행된 『김해군읍지(金海郡邑誌)』에서는 진양 강씨(晋陽 姜氏)로 기록되어 있다.
[연원]
진주 강씨는 시조 강이식부터 16세손 강도(姜度)에 이르기까지 가계가 외줄로 내려오다가 강도 이후 강희경(姜希經)과 강종일(姜宗一) 두 가계로 분화한다. 강희경의 가계는 강복민(姜福民)-강창서(姜昌瑞)-강계용·강위용(姜渭庸)·강원용(姜遠庸)으로 이어지고, 강계용의 가계는 박사공파, 강위용의 가계는 소감공파(少監公派), 강원용의 가계는 시중공파(侍中公派)가 되었다. 강종일의 가계는 강극술(姜極述)-강보능(姜甫能)-강민첨(姜民瞻)-강단(姜旦)으로 이어지면서 은렬공파(殷烈公派)가 되었다.
박사공파 강계용의 후손으로, 2세 강인문(姜引文)은 아버지 뒤를 이어 통신사 서장관으로 활약하였고, 3세 강사첨(姜師瞻)은 충렬왕(忠烈王) 때 감찰어사를 지냈으며, 4세 강창귀(姜昌貴)는 판도정랑을 거쳐 계림판관을 지냈다. 은렬공파 강민첨도 『고려사(高麗史)』「열전」에 실린 인물로, 목종(穆宗)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전공을 많이 쌓아 입신하였으며, 대장군·병부상서·지중추부사 등 고위직을 지냈다.
[입향 경위]
조선 시대 김해 지역에 입향한 진주 강씨는 박사공파 강계용의 17세손 강석지(姜錫祉)의 여섯째 아들 강원부(姜源溥)이다. 강원부는 함안군 칠원에서 김해로 이거하여 진주 강씨 김해 입향조가 되었다. 김해향교(金海鄕校) 향안(鄕案) 1690년(숙종 16) 11월 항에 수록된 인물로 유학(幼學) 강백기(姜伯奇)가 있는데, 이 시기에는 진주 강씨가 김해 지역의 재지 사족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현황]
진주 강씨가 김해 지역의 성씨로 소개되는 것은 『분성여지승람신증초』 성씨조부터이다. 이후 『김해부읍지』[1786] 성씨조에서는 본관을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강씨가 수록되어 있고, 1832년(순조 32) 간행된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서도 마찬가지로 강씨를 소개하고 있다. 『영남읍지(嶺南邑誌)』[1895년]와 『김해군읍지』[1899]에서는 진양 강씨로 기록하고 있다. 1904년(고종 41)에 간행한 『경상남도 김해군 가호안(慶尙南道 金海郡 家戶案)』에서는 김해군의 면리별 가구 수와 가구주의 성명을 기록하고 있다. 김해군 13개 면에 거주하는 강씨 성을 가진 가구주는 진례면에 5가구, 하계면에 3가구, 대산면에 3가구, 중북면에 9가구, 하북면에 27가구, 상동면에 37가구, 활천면에 15가구, 덕도면에 8가구, 명지면에 9가구 정도가 분포하고 있다.
1929년에 간행된 『김해읍지(金海邑誌)』 성씨조에서는 당시 김해 지역에 거주하는 성씨를 면리별로 조사하여 소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진주 강씨는 김해면의 고서리·지내리, 하동면 초정리, 대저면의 대지리·평강리·도도리, 장유면의 율하리·봉림리, 진례면 상우리, 진영면 내룡리, 이북면의 안하리·퇴래리·명동·어병동, 명지면 중리 등에 분포하고 있다. 1934년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서는 전국의 지역별 성씨의 종류와 가구 수, 집성촌의 분포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당시 김해군의 가구 수는 2만 2983가구로, 108개의 성씨가 분포한 것으로 집계하였다. 이 가운데 김해 김씨(金海 金氏)를 비롯하여 30개의 성씨가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는데, 진주 강씨는 당시 이북면 퇴래리에 28가구, 하동면 초정리에 25가구가 세거하고 있었다.
2000년 통계청의 성씨 본관별 가구 및 인구 통계에 따르면 당시 김해시에는 225개의 성씨와 2,724개의 본관이 있는데, 이는 김해시 인구 9만 8985가구 33만 829명이 가지고 있는 성씨였다. 이 중 100가구 이상 거주하는 성씨는 김해 김씨 등 128개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진주 강씨는 2,619가구에 8,822명으로, 김해 김씨[1만 3287가구 4만 3345명], 밀양 박씨(密陽 朴氏)[8,097가구 2만 6878명], 경주 이씨(慶州 李氏)[3,899가구 1만 2951명], 전주 이씨[3,351가구 1만 1330명], 경주 최씨(慶州 崔氏)[2,796가구 9,279명], 경주 김씨(慶州 金氏)[2,638가구 9,003명]에 이어 일곱 번째이다.
2015년 통계청의 ‘인구 주택 총조사’에서는 가구 수는 없고 본관 성씨별 인구수만 조사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당시 김해시 인구는 51만 2517명, 성씨는 143개, 본관은 820여 개로 집계되었다. 이 중 100가구로 추산되는 340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성씨는 김해 김씨를 비롯하여 169개 정도가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진주 강씨는 1만 5372명으로, 김해 김씨[6만 1341명], 밀양 박씨[3만 9765명], 전주 이씨[1만 6882명], 경주 이씨[1만 6418명]에 이어 다섯 번째이다. 김해 지역의 진주 강씨는 2000년도에 비해 100%나 증가한 것으로 진주 강씨가 김해 지역의 인구 증가를 주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