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황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626
한자 昌原 黃氏
영어공식명칭 Changwon Hwangssi|Changwon Hwang Clan
이칭/별칭 회산 황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광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창원 황씨 본관 - 경상남도 창원시
성씨 시조 황석기|황충준|황양충

[정의]

황석기·황충준·황양충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김해시의 세거 성씨.

[개설]

창원 황씨(昌原 黃氏)는 황석기(黃石奇)를 시조로 하는 회산군파(檜山君派), 황충준(黃忠俊)을 시조로 하는 시중공파(侍中公派), 호장(戶長) 황양충(黃亮忠)을 시조로 하는 호장공파(戶長公派) 세 계열이 있다. 김해 관련 지리서의 성씨조에서 창원 황씨가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1895년(고종 32) 간행된 『김해읍지(金海邑誌)』이다. 17세기 초 창원 황씨김해 향안에 입록되는 등 지역의 유력 성씨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창원 황씨가 김해 지역에 입향한 시기는 그 이전으로 올려 볼 수 있다. 회산 황씨(檜山 黃氏)라고도 한다.

[연원]

창원 황씨는 본관을 같이하면서도 계보를 달리하는 세 파가 있다.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문하평장사 황석기를 시조로 하는 회산군파, 황충준을 시조로 하고 후손 황신(黃信)을 1세조로 하는 시중공파, 호장 황양충을 시조로 하는 호장공파가 그것이다.

회산군파는 시조 황석기의 두 아들 황상(黃裳)과 황창(黃昌)의 가계로 이어지는데, 황상의 아들 황윤서(黃允瑞)가 황진(黃珍)·황현(黃玹)·황괴(黃璝)·황선(黃璿)·황수(黃琇) 등 다섯 아들을 두고, 황창의 아들 황선경(黃善慶)이 황인헌(黃仁軒)·황의헌(黃義軒)·황예헌(黃禮軒) 등 세 아들을 두어 가세를 확장하였다.

시중공파는 시조 황충준의 후손으로 황하응(黃河應)과 황하안(黃河晏)을 설정하고, 황하응의 증손 황신을 1세로 하여 2세 황거정(黃居正)과 황거직(黃居直)으로 이어지는데, 황거정은 황효성(黃孝誠)과 황효경(黃孝敬), 황효공(黃孝恭) 세 아들을 두고, 황거직은 아들 황효순(黃孝順)을 두어 가세가 번창하였다.

황양충을 시조로 하는 호장공파는 2세 황양돈(黃養敦)-황석주(黃石柱)-황영렬(黃英烈)-황유(黃裕) 단계로 이어지다가 5세 황유가 황진백(黃眞伯)과 황진신(黃眞信) 두 아들을 두고, 황진백의 손자 황처중(黃處中)이 황제(黃躋)·황장(黃䠆)·황전(黃躔) 세 아들을 두어 가세를 꽃피웠다.

[입향 경위]

김해 관련 지리서의 성씨조에서 창원 황씨가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1895년(고종 32)에 간행된 『영남읍지(嶺南邑誌)』 속 『김해읍지』에서부터이다. 1786년(정조 10)에 간행된 『김해부읍지(金海府邑誌)』에서는 본관은 밝히지 않고 ‘황씨’를 소개하고 있는데, 창원 황씨일 가능성이 높다.

김해향교(金海鄕校)에서 작성한 향안에는 1601년(선조 34) 11월 항에 창원 황씨 황세열(黃世烈)이, 1604년(선조 37) 11월 항에 황세희(黃世熙) 등이 올라와 있다. 황세열은 1612년(광해군 4) 김해향교 유안(儒案)에 입록되었으며, 황세희는 1630년(인조 8) 향중(鄕中) 입의(立議)에서도 확인된다. 1624년 김해향교 내유안(內儒案)에서는 황시정(黃是正)이 입록되었고, 1629년 김해향교 원납 유생안(願納 儒生案)에는 사망한 황흥주(黃興柱)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

이처럼 17세기 초 창원 황씨김해 향안에 입록되는 등 지역의 유력 성씨로 자리 잡고 있는데, 이로 미루어 창원 황씨가 김해 지역에 입향한 시기는 그보다 이전인 조선 전기까지 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김해 최초의 읍지로 보이는 『분성여지승람신증초(盆城輿地勝覽新增抄)』 과거(科擧)조에는 김해의 문과 합격자로 황유중(黃有中)을 소개하고 있는데, 황유중의 아버지는 황자수(黃子壽)이고, 1514년(중종 9)에 급제하여 벼슬이 북도평사(北道評事)에 이르렀다고 한다.

[현황]

1904년(고종 41)에 간행된 『경상남도 김해군 가호안(慶尙南道 金海郡 家戶案)』에는 당시 김해 지역의 면리별 가구 수와 가구주의 성명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가호안 하책에 실린 13개 면 4,789호의 성씨 종류는 모두 83개인데, 이 가운데 황씨는 하계면에 4호, 대산면에 2호, 상북면에 1호, 중북면에 4호, 하북면에 1호, 생림일작면에 3호, 상동면에 6호, 하동면에 8호, 활천면에 7호, 덕도면에 1호, 명지면에 4호 등 모두 40호 정도 거주하고 있었다.

1929년에 간행된 『김해읍지』 성씨조에서는 당시 김해 지역에 거주하는 성씨를 면리별로 소개하고 있는데, 창원 황씨는 녹산면 송정리[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송정동]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1934년에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는 전국의 지역별 성씨의 종류와 가구 수, 집성촌 등을 소개하고 있으며, 김해군에는 2만 2983가구, 108개의 성씨가 분포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 중 황씨는 253가구로 분포 순위가 22위였다.

2000년 통계청의 성씨 본관별 가구 및 인구 통계에 따르면, 당시 김해시 인구는 9만 8985가구에 33만 829명이었고, 여기에 225개의 성과 2,724개의 본관 성씨가 있었다. 이 가운데 100가구 이상 거주하는 성씨의 종류는 김해 김씨(金海 金氏) 등 128개이며, 창원 황씨는 914가구에 3,017명으로 김해 전체 인구의 0.96%를 차지하며 순위로는 21위였다.

2015년 통계청의 ‘인구 주택 총조사’에서는 가구 수는 없고 본관 성씨별 인구수만 조사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당시 김해시 인구는 51만 2517명, 성씨는 143개, 본관은 820여 개로 집계되었다. 이 중 100가구로 추산되는 340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성씨는 김해 김씨를 비롯하여 169개로 확인되며, 창원 황씨는 4,002명으로 2000년 통계에 비해 985명이 증가하였지만, 이는 당시 김해 전체 인구의 0.83%로, 순위도 27위로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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