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6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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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管 |
영어공식명칭 | Kim Kwan |
이칭/별칭 | 김관(金館),희범(希範),정성(靖醒),정성헌(靖醒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박상현 |
[정의]
고려 후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문신.
[개설]
김관(金管)[1250~1345]은 김해를 본관으로 하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다. 김관의 활동에 관한 내용은 『고려사』 등에서는 찾을 수 없고, 주로 족보 자료에 나타난다. 충렬왕이 병풍을 하사하자 김관이 머물렀던 마을을 ‘어병(御屛)’으로 고쳐 불렀다고 하는데,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병동리 어병마을이다.
[가계]
김관의 자는 희범(希範)이고, 호는 정성(靖醒) 또는 정성헌(靖醒軒)이다. 초명(初名)은 관(館)이며, ‘관(管)’이라는 이름은 왕이 하사한 것이다. 할아버지는 김상주(金相宙)이고, 아버지는 사인(舍人) 김용직(金龍直)이다. 아들은 김문숙(金文淑)이다.
[활동 사항]
김관은 1266년(원종 7) 명경과에 급제하였으며, 교서랑을 거쳐 직한림원이 되었다. 1269년(원종 10) 원종이 임연(林衍) 일파에 의해 폐위당하였다가 복위하였는데, 이때 홍문계(洪文系) 등과 함께 원종 복위에 일조하였다. 1270년(원종 11)에는 삼별초에 억류된 안향(安珦)[1243~1306]의 탈출을 도왔으며, 1277년(충렬왕 3)에는 감찰어사를 거쳐 국자사업(國子司業)에 올랐다.
1289년(충렬왕 15) 충선왕이 원나라에 갈 때 안향과 함께 수행하였으며, 1298년(충렬왕 24) 다시금 충선왕을 따라 원나라를 다녀왔다. 1301년(충렬왕 27) 도성의 화재로 궁궐이 화염에 휩싸이자, 위험을 무릅쓰고 왕을 구출하였다. 1343년(충혜왕 복위 4) 충혜왕이 원나라에 의해 게양(揭陽)으로 유배당하였을 때 호종하였고, 1344년 1월 악양(岳陽)에서 충혜왕이 사망하자 시신과 함께 환국하였다고 한다. 1345년(충목왕 1) 충목왕이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제수하고 궤장(几杖)을 내렸다. 그러나 연로한 데다 충혜왕의 죽음에 대한 애도 등으로 인하여 1345년 2월 19일 사망하였다.
[묘소]
김관의 무덤은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유등리 저소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