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649
한자 宋天逢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신은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330년 - 송천봉 장원 급제
활동 시기/일시 1348년 - 송천봉 광양감무 전임
활동 시기/일시 1353년 - 송천봉 감찰집의 제수
성격 문신
성별
본관 김해
대표 관직 첨서밀직사사

[정의]

고려 후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문신.

[가계]

송천봉(宋天逢)김해 송씨의 시조이다. 성주 이씨 이득방(李得芳)의 딸과 혼인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아들은 송호(宋浩)이고, 딸은 위화도회군에 참여한 능성 구씨 구성로(具成老)와 혼인하였다.

[활동 사항]

송천봉은 1330년(충숙왕 17) 안문개(安文凱)와 이담(李湛)이 시관이었을 때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때 송천봉과 함께 급제한 인물들로 홍언박(洪彦博)·이달존(李達尊)·정도전(鄭道傳) 등이 있다. 송천봉이 과거에 급제하자 민사평(閔思平)은 다음과 같은 축하 시를 짓기도 하였다.

‘누실시’에 차운하여 송 학사에게 축하하며[次陋室詩韻賀宋學士]

묘령피천기향려(妙齡被薦起鄕廬)[젊은 날에 천거되어 고향 집에서 일어나니]

의기증여이수여(意氣曾如耳數余)[일찍이 의기가 진여를 꾸짖던 장이와 같았네]

과사성명동장옥(果使聲名動場屋)[과연 명성이 과장을 진동케 하니]

고지부귀대문려(固知富貴大門閭)[부귀한 대문벌임을 진실로 알겠도다]

영개표방다승총(榮開豹榜多承寵)[표방이 펼쳐져 영광스럽게도 은총을 많이 받았으니]

공재형창호독서(功在螢窓好讀書)[공을 이룸은 반딧불이 비치는 창에서 독서를 좋아한 데 있다네]

욕벽경연영좌주(欲闢慶筵迎座主)[축하연을 열어 좌주를 맞이하고 싶거든]

행간누실상견여(行看陋室上肩輿)[바야흐로 누추한 집 옆의 교자를 보게나]

『급암제집』 권2, 율시

충목왕 때 강윤충(康允忠)의 무리가 갖은 방법으로 정치도감을 저지하려 하였고, 자신의 당여인 안자유(安子由)를 정당문학에 임명하려 하였다. 당시 간관이던 송천봉은 이방실(李芳實) 등과 함께 안자유의 임명장에 끝내 서명하지 않았다. 이후 감찰장령으로 충혜왕의 측근이던 평리(評理) 전윤장(全允臧)을 탄핵하였으나, 도리어 참소를 당하여 초도구당(草島勾當)으로 좌천되었다. 이에 대관(臺官)이 모두 사직하고, 감찰 등이 송천봉을 소환할 것을 요청하였으며, 정승 왕후(王煦)도 구명하였다. 결국 정당문학 신맹(辛孟)과 판밀직 이공수(李公遂)가 강력히 요청하여 광양감무(光陽監務)로 전임되었다.

공민왕 즉위 초에는 감찰집의로 임명되었다가 곧이어 과거를 주관하였다. 이때 선발한 한달한(韓達漢) 등이 공민왕의 명으로 모란시[牧丹詩]를 지었으나, 정밀하지 못하여 왕에게 질타를 받았다. 우왕이 즉위한 뒤 대사헌이 되어 환관 윤충좌(尹忠佐)를 강력히 탄핵하였다. 이후 송천봉은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에 임명되었고, 김해군(金海君)에 책봉되었다. 81세에 사망하였으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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