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6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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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彦龍 |
영어공식명칭 | Heo Eonry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백지국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은거한 문신.
[가계]
허언룡(許彦龍)의 본관은 김해이며, 허황옥의 35세손인 허염(許琰)을 시조로 한다. 허염은 고려 때 대광(大匡)으로서 가락군(駕洛君)에 봉하여졌다. 2세 허군언(許君彦)은 병부시랑을 지냈고, 3세 허자(許資)는 병부상서를 지냈다. 허자는 허송죽(許松竹)·허연(許延)·허징(許澄) 3남을 두었는데, 이중 허징이 허언룡의 증조할아버지이다. 허언룡의 할아버지 허평(許枰)은 판도판각(版圖判閣)을 지냈다. 허평의 사촌 허유전(許有全)은 문과에 급제하여 고관과 공신에 올라 ‘김해부원군’에 봉하여졌는데, 고려 시대 활동한 김해 허씨 중 가장 유명하다. 김해 허씨는 고려 후기 중앙에 진출하여 상경종사(上京從仕)하며 근기 지역에 분포하였고, 일부는 영남 지역에 산재하였다.
허언룡의 아버지 허증(許增)은 조선이 개창된 후에 관료로 진출하였는데, 참판을 역임하였다. 허언룡은 슬하에 1남을 두었는데, 허을충(許乙忠)이다. 음사로 주부(主簿)가 되었다. 『김해허씨족보』에는 허을충의 자손이 김해에 거주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 허경윤(許景胤)이 있다. 허경윤은 김해부 대사동[현 경상남도 김해시 봉황동]에서 출생하였다. 임진왜란으로 훼손된 수로왕릉을 고쳤으며, 신산서원의 건립을 주도하였고,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
[활동 사항]
허언룡은 조선 세종 때 예조판서를 역임하였으며, 청백리에 봉하여졌다. 『여지도서』에는 김해에 우거(寓居)한 것으로 나온다. 그 외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