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665
한자 曺爾樞
영어공식명칭 Jo Yichu
이칭/별칭 원경(元卿),사우당(四友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상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61년연표보기 - 조이추 출생
몰년 시기/일시 1707년연표보기 - 조이추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09년 - 조이추 예암서원 배향
출생지 경상남도 김해시 활천동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예암서원 - 경상남도 김해시 삼안로112번길 36[삼방동 10-1]지도보기
성격 학자
성별
본관 남평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가계]

조이추(曺爾樞)[1661~1707]의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자는 원경(元卿)이고, 호는 사우당(四友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원해(曺元海)이고, 할아버지는 조덕여(曺德輿)이며, 아버지는 조전(曺恮)이다.

[활동 사항]

조이추는 1661년(현종 2)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활천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있었다고 한다. 10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2년 뒤에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자, 예를 행하는 것이 어른과 같았다고 전한다.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이황(李滉)[1501~1570]의 「성학십도」를 손수 베껴서 걸어 놓고, 옛사람의 좋은 말과 행실을 기록하여 스스로 반성하고 경계하였다. 또한 아침저녁으로는 가묘를 참배하고, 대종(大宗) 제사에는 반드시 제철 제수로 도와주었다고 한다.

영남에서 기호에 이르기까지 덕망이 있는 사람이 찾아오면 누구나 먼저 조이추의 안부를 물었다. 사창(社倉) 제도를 본떠 먼저 돈과 곡식을 내어놓고, 향약 14조를 만들어 고을의 풍속을 선도하였다. 삼차수와 칠점산 사이에 정사를 짓고 학을 두 마리 길렀는데, 남쪽 기둥에 ‘순학(馴鶴)’이라 편액하고 글을 지어 기(記)로 삼았다. 매화나무·대나무·소나무·국화를 심어 놓고 정사를 ‘사우당(四友堂)’이라 이름하였다. 평생을 벼슬하지 않았으며, 1707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조이추의 저서로 『사우당선생문집』이 있다.

[상훈과 추모]

조이추는 1709년(숙종 35) 예암서원(禮巖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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